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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석무의 실학산책

연산·광해는 왜 ‘왕’이 아닌 ‘군’이 됐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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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조선왕조 500년에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王)이라는 호칭을 받지 못하고 군(君)이라는 한 단계 낮은 호칭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조선 제10대 임금이던 연산군은 재위 12년에 수많은 신진 사류들을 죽이고, 생모 폐비에 찬성했다는 윤필상 등 수십 명을 형장에 보내고, 민심을 듣는 경연과 사간원을 폐지했다. 광해군은 조선 제15대 임금으로 15년이나 집권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왕의 호칭까지 받을 수 없었으니 그런 불행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았고 백성을 두려워할 줄 몰랐던 두 군(君)은 퇴출당한 국왕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부터 동양 정치는 『서경(書經)』을 바이블로 여기면서 이상향인 요순시대를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성인(聖人) 정치를 꿈꾸는 일을 최고로 여겼다. 『서경』의 대우모(大禹謨)편에는 어떤 정치가 요순정치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많다. “두려워하는 바가 민심이 아니고 그 누구이겠소? [可畏非民], 백성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오[欽哉], 백성이 바라는 바를 경건한 마음으로 닦도록 하시오[敬修其可願]” 등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불행한 사건
민심 외면하다 권좌서 쫓겨나
다산 경세론의 알맹이도 백성
통치자라면 국민 두려워해야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에서 연산군으로 나온 정진영. [중앙포토]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에서 연산군으로 나온 정진영. [중앙포토]

평생토록 온갖 경세(經世)의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 또한 『서경』의 뜻을 받아들여, 임금이라면, 통치자라면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입법·사법·행정 3권을 쥔 목민관 또한 작은 나라의 제후와 같다고 여기고 목민관이라면 반드시 백성과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라도 영암군수에서 함경도 부령도호부사로 부임하는 친구의 아들 이종영(李鍾英)이라는 목민관에게 다산이 내려준 글에선 외천(畏天)·외민(畏民)의 간절한 이야기를 성실하게 제시했다. 정부와 감독관청은 두려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늘, 실체가 안 보이는 백성은 무서운 줄 모르다가 결국 추방됐던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산은 『목민심서』 봉공(奉公)편의 문보(文報)에서 무서운 백성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실례를 들며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천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는 사람이 연약한 백성들이다. 산처럼 높고 묵중한 것 또한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이 아무리 높은 존재일지라도 백성들을 등에 업고 투쟁하면 굽히지 않는 사람이 없다[天下之至賤無告者 小民也 天下之隆重如山者 亦小民也…故上司雖尊 戴民以爭 鮮不屈焉]”라고 했다. 백성과 함께 투쟁하게 되면 아무리 높은 통치자라도 약한 목민관에게 굽힐 수밖에 없다는 무서운 이야기다. 백성은 물이어서 배가 순풍에 지나가게 해주지만, 날씨가 변하면 물이 배를 뒤집듯이 백성은 통치자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고 깨우쳤다.

1894년 갑오년, 동학 농민군이 들고일어나 전주감영을 장악하여 집강소를 차리고 전라도 일대를 동학군 세상으로 만들었던 역사가 있다. 1960년 4·19 때는 젊은 학생들이 독재자를 추방했다. 몇 년 전에는 백성들이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다. 투표지 한 장 권리밖에 없는 연약한 백성[小民]들, 그들이 뭉치면 60만 대군 통수권자를 물러나게 할 수 있으니, 백성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권력이란 일단 무서운 존재다. 군대·경찰·검찰은 백성을 억누를 수 있는 두려운 힘이다. 그러나 권력이 공정하고 상식적일 때 무서운 것이지, 공정과 상식에서 벗어난 권력은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임금의 권력으로 못할 일이 없는 군왕이었다. 하지만 백성이 두려운 줄 모르고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 과거의 이 나라 독재자들도 자기만 옳고 바르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탄압하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오늘의 정권도 백성을 도외시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거대한 산을 화마로 삼켜버린 산불, 처음 시작은 촛불 하나만큼의 작은 불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작은 불씨가 끝내는 온 산을 삼키듯이 백성들의 아우성을 가볍게 보아선 안 된다. 그들이 왜 촛불을 켜기 시작했는가를 파악하여 그 불씨가 확대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백성을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나라 전반이 평안해지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오늘의 권력은 그런 노력을 성심껏 하는 것 같지 않다.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 문제, 미국의 도청 문제 등에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느낌이다. 검찰공화국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조에 대한 일방적 시각, 언론에 대한 불신 문제도 민주주의 국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소극적 대응도 아쉽다. 미국·중국의 충돌, 북한 핵 도발 등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이라지만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 작업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는 국정 추동력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역사가 말해준다. 눈앞의 난제를 헤쳐가려면 무엇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부터 갖춰야 한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