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준 마조비예츠키 참패/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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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폴란드 대통령선거에서 2위를 차지해 다음달 9일 결선투표에 나가게 된 티민스키는 엄정하게 따지면 이 나라 민주화에 기여한게 없는 인물이다. 오히려 못사는 조국을 일찌감치 떠나 외국에서 돈좀 모은 사람일 뿐이다.
이에 비해 자유노조지도자 바웬사와 총리 마조비예츠키는 폴란드,나아가 소련 및 동유럽국가들의 민주화와 자유화에 불을 당긴 사람들이다.
공산 독재라는 긴 터널의 끝이 안보이던 암울했던 시기 바웬사가 민중의 우상으로 민주화의 선봉에 섰고,마조비예츠키는 그의 뒤에서 이념적·이론적 기둥역할을 맡아 함께 투쟁했다.
공산독재가 무너져 내림으로써 어떻게 보면 이들은 1차적 투쟁대상이 없어진 셈이며 민주구현의 2차목표를 실현하노라면 각각의 제길을 가야하는 운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번 폴란드 대권경쟁은 지켜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경쟁을 「진흙탕속의 개싸움」으로 추잡하게 인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실현의 방법론이 다른 사람들이 어차피 이 때문에 갈라서 국민 심판을 구하는게 이번 선거였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은 이 두 사람중의 한명일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들은 무명의 티민스키 대신에 마조비예츠키를 1차투표에서 버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폴란드 국민은 티민스키를 바르샤바판 아이아코카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란드의 장래를 생각하고 동정하는 국내외의 양식은 이같은 상황을 폴란드 국민의 일천한 민주정치 경험 탓으로 풀이한다.
티민스키의 등장,특히 마조비예츠키의 패배는 폴란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위험신호로 해석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물론 이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바웬사의 지도력과 마조비예츠키의 현실적 사고가 결합,폴란드 국민역량을 총집결시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두사람은 역량집결에 실패했고,선거결과에도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다.
세계로부터 폴란드가 「동정받는 나라」로 남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폴란드 국민들이 결정하고 책임질 사항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정치현실을 국내에서 경험한 기자의 눈엔 이들의 싸움과 이로 인해 야기된 국론분열,앞으로 예상되는 정치·경제·사회적 불안 등이 남의 일같지 않았다.<바르샤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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