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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에 담근 김치 맛이 더 좋은 이유…CO2 배출돼 발효에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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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김치.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김치. 연합뉴스

전통 옹기에 담근 김치가 유리 용기에 담근 김치보다 맛있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고, 이를 통해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적절히 배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옹기가 '숨을 쉰다'는 얘기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미국 조지아공대 기계공학과 데이비드 후 교수와 박사과정의 김수환 연구원은 최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로열 소사이어티 인터페이스(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에 발표한 논문에서 "다공성 구조를 가진 옹기가 토양과 비슷한 조건을 부여해 김치 발효하는 유산균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제주도에서 전통 장인이 만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수제 옹기와 배추를 사 실험에 사용했다.
옹기는 부피가 4.6L, 입구 지름이 20㎝, 높이가 20㎝였다.

김치 실험 장면. [자료: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23]

김치 실험 장면. [자료: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23]

연구팀은 절인 배추를 옹기와 밀폐 유리그릇에 담아 발효시키면서 발효의 특징인 이산화탄소 농도를 시간에 따라 측정했다.

발효 24시간 후에는 배추에서 빠져나온 용액이 500mL 증가했고, 이후 며칠 동안 거품이 생겼는데, 유산균의 대사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 때문이었다.

발효 과정에서 옹기 외부에 소금 결정이 침전되는 '소금 꽃' 현상도 관찰됐다.

소금물이 옹기 벽을 통과하고, 외부 표면에서 증발하면서 소금 결정을 남긴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이른바 '도자기가 숨을 쉰다'고 말하는 현상이다.

제주도 전통 옹기. 입과 바닥이 좁고 배가 부르다. 철분이 많은 화산 토질이라 붉은 색을 띤다. 중앙포토

제주도 전통 옹기. 입과 바닥이 좁고 배가 부르다. 철분이 많은 화산 토질이라 붉은 색을 띤다. 중앙포토

연구팀은 이산화탄소가 계속 빠져나간다는 점을 고려한 유체역학적 모델을 적용, 배추 1㎏당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옹기에서는 3670㎎, 유리 용기에서는 2915㎎으로 계산했다.

옹기에 담갔을 때 이산화탄소가 26% 더 생성된 셈이다.

연구팀은 "투과성인 옹기는 이산화탄소가 용기 밖으로 빠져나가게 해 발효 속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옹기의 다공성 벽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데' 도움이 돼 내부 이산화탄소 수준을 유산균이 선호하는 수준으로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발효를 통해 기체가 생기면서 옹기 내부에는 압력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옹기 벽을 통해 지속해서이산화탄소와 발효액 일부가 유출된다는 것이다.

옹기 외벽에 나타난 '소금 꽃' 현상. [자료: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23]

옹기 외벽에 나타난 '소금 꽃' 현상. [자료: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23]

옹기는 가스를 방출하면서도 액체 대부분을 보존하는데, 압력이 높게 유지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염 물질이 옹기 내부로 것을 차단하게 된다.

유해한 세균은 막고, 유익한 세균의 성장은 지켜주는 '안전밸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적당한 공극을 가진 옹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비법이라고 지적했다.

물이나 공기가 너무 잘 새거나 너무 막히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옹기는 1~10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크기의 수많은 미세 공극을 갖고 있다.
현대적인 화학이나 미생물학, 유체역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적절하게 조건을 갖춘 게 옹기인 셈이다.

유리 용기의 경우도 뚜껑이 완전히 밀폐되지 않아 일정한 투과성은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리 용기 내 압력이 일정 한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그 이하에서는 밀봉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김치 담는 방식이 옳았음이 입증됐다"라며 "식품 발효와 저장에서 에너지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치 연구를 진행한 미국 조지아 공대 연구팀. 오른쪽이 데이비드 후 교수, 왼쪽이 김수환 연구원이다. [사진: 조지아공대]

김치 연구를 진행한 미국 조지아 공대 연구팀. 오른쪽이 데이비드 후 교수, 왼쪽이 김수환 연구원이다. [사진: 조지아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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