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합스부르크 가문이 나폴레옹에 패배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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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품 중 합스부르크 가문과 관련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품들 중에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도 있었다.

합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세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던 가문이다. 그런데 후대에 올수록 자손이 잘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난 자손도 정신병을 앓던가 허약해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근친결혼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의 고귀한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자를 가문 안에서 골랐다. 수백 년 동안 이러다 보니 유전병이 발생했던 것이다.

혈통 보존 위한 근친혼 거듭
주걱턱 등 유전병에 시달려
혁명기 프랑스는 능력 중시
외부인 수혈의 중요성 시사

스페인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

합스부르크 왕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근친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주걱턱과 이로 인한 심각한 치아 부정교합에 시달렸다. 사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 [중앙포토]

합스부르크 왕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근친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주걱턱과 이로 인한 심각한 치아 부정교합에 시달렸다. 사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 [중앙포토]

스페인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가 오스트리아에 있는 이유도 근친결혼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삼촌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1세와 정혼했기 때문에,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초상화를 그려 오스트리아로 보냈던 것이다. 그림에서는 우아하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공주도 가문의 유전인 주걱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에는 주걱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가문의 많은 사람이 심한 주걱턱 때문에 생긴 치아 부정교합으로 음식을 씹기 어려워서 영양섭취를 잘 못 해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힘을 잃은 또 다른 이유는 신분제에 기반을 둔 폐쇄적인 국가였기 때문이다. 한번 귀족으로 태어나면 영원히 귀족으로서 부를 물려받고 고위직을 차지하지만, 평민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었다. 이와 대비되는 국가가 합스부르크 왕가와 많은 전쟁을 벌였던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다. 왜 그런지 자세히 알아보자.

피비린내가 몰아치던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계급, 혈통,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식민지 코르시카 출신이다. 천대받던 그는 하급 장교에서 출발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승진을 거듭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나폴레옹을 도운 맹장 중에서도 귀족 출신은 거의 없다. 사병이나 하급 장교에서 출발해서 각종 공적을 쌓아 승진했다. 하층민이나 외국인들도 능력을 증명하면 승진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즉 나폴레옹의 성공 비결은 개방성과 능력 위주의 실용적인 인사다.

하급 장교에서 정상 오른 나폴레옹

합스부르크 왕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근친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주걱턱과 이로 인한 심각한 치아 부정교합에 시달렸다. 사진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중앙포토]

합스부르크 왕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근친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주걱턱과 이로 인한 심각한 치아 부정교합에 시달렸다. 사진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중앙포토]

프랑스가 엘리트 관료들을 비 귀족층으로부터 발탁하여 개혁을 실시하는 동안,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귀족이나 왕실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없어도 국가의 경영을 맡았고 장군이 되어 전쟁을 지휘했다. 그러니 유능한 나폴레옹의 장군들 상대가 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왕이 퇴위할 때까지 오스트리아는 이런 폐쇄적 체제를 유지했다.

이런 나폴레옹의 성공비결이나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한 이유를 우리나라 기업들도 명심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폐쇄성을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한때 한국 기업들은 평생 한 기업에서 뼈를 묻을 충신들만 찾았다. 이처럼 기업 내부 사람들로만 일하려는 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결혼과 유사한 행위다. 물론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능력 있는 외부 사람을 영입하는 경우가 생겼다.

외부에서 영입한 사람은 내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한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르다. 서로 다른 배경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다각도에서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므로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술연구 결과를 보면 평균적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의 성과가 내부에서 승진한 CEO보다 못하고, 영입 후 과거에는 없던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니까 CEO로 영입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 회사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한다면 멘토나 보좌관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같이 붙여서 조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영입의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외부 영입이 힘들다면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 컨설팅이라도 받아 경영에 참고해야 한다.

외부 영입 힘들면 컨설팅이라도

또한 누구의 자녀나 친척이라서 임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배주주의 자녀가 회사에 입사해서 일하는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으로 승진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의미다. 이는 마치 유럽의 중세 봉건제 시대 귀족의 아들은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해서 시간만 지나면 장군이 되던 것과 비슷하다. 이런 경영진을 부하 직원들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을까?

이제는 혈통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 하는 시기다. 과거 100년 동안 벌어졌던 변화보다 최근 10년 동안 벌어지는 변화가 더 많을 정도로 급변하는 지금, 능력 없는 사람이 경영을 맡았다가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회사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요하다면 능력 있는 사람을 영입하거나 외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또한 혈통이나 연공이 아니라 능력 위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제도에 만족해서 열심히 일할 유인이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유럽을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듯이, 지금 잘 나가는 우리 회사도 인재들의 외면을 받다가 머지않아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