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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이엔드] "너를 위해 기도해"...긍정의 기운 불어넣는 붓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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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강준영은 자신과 그의 주변에 몽글몽글 솟아나는 감정과 이야기를 도자와 캔버스 위에 펼쳐내는 작가다.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창작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평면의 캔버스로 채울 수 없는 물성은 도자를 이용해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더욱 다채롭게 표현할 땐 넓은 캔버스를 활용한다. 두 매체 안에 담는 메시지는 대동소이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즉 희로애락을 그의 의지대로 녹여낸다.

지난 3월 홍제동 작업실에서 만난 강준영 작가. 사진 김흥수

지난 3월 홍제동 작업실에서 만난 강준영 작가. 사진 김흥수

그는 최근 ‘가족’과 ‘집’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자전적 경험을 더한 작품 창작에 집중했다. 집을 관계 맺음의 시초이자 사람들(가족 구성원)의 감정을 이해해 나가는 정서적 토양이라 여긴 것. 이러한 작가의 생각과 내밀한 감정선은 과감한 붓질을 통해 구현되는데, ‘Pray for you(너를 위해 기도해)’ ‘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워)’ ‘I adore you(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등 직관적인 문구를 더해 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인류애적 사랑과 희망의 목소리를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결혼과 양육을 경험하며 삶에 대해 더욱 다층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됐다는 그의 작품 세계와 일상을 들어봤다.

- 얼마 전 개인전을 마쳤어요.
“오랜만에 준비한 전시였어요. 직업 특성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그렇지 않더라고요. 40대 중반에 일곱 살이 된 아들을 돌보며 준비하느라 상당히 바빴죠. 회화 작품에 좀 더 집중을 했던 전시로 건축적 관점에서의 집,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장소로서의 집을 담으려 했습니다. 집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죠.”

2023년 2월까지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진행한 강준영 작가의 개인전 '″O″ 와 ″X″ 그리고 우리' 전경. 사진 이길이구 갤러리

2023년 2월까지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진행한 강준영 작가의 개인전 '″O″ 와 ″X″ 그리고 우리' 전경. 사진 이길이구 갤러리

- 회화와 도자, 두 매체를 창작 활동에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으로 선택했는데, 도자라는 대상이 조형과 회화를 아우르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회화와 도자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가 생각보다 많아요. 피카소의 황혼기 작업 대상도 도자였거든요.”

- 무엇이 더 좋은가요.
“이건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더 좋은지 선택하는 것과 같아요. 어떤 것을 선택해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자세와 태도가 바뀝니다. 사용하는 도구도 다르고 작업 방식도 다르니까요.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름다운 노동을 요한다는 사실입니다. 완성작을내놓기까지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요.”

- 농밀하고 즉발적인 붓 터치가 시선을 잡아 끌더라고요.
“성인이 되기 전 마이클 잭슨을 포함해 흑인 문화, 힙합 문화에 심취했어요. 자연스레 그라피티에 매료됐죠. 장-미셸 바스키아의 붓터치와 낙서 같은 효과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섬세함을 요하는 ‘입시 미술’이 너무 힘들었죠(웃음).”

강준영 작가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유년 시절 그래피티 문화와 장-미셸 바스키아의 강한 붓 터치에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조했다. 좋은 의미를 담은 문구 또한 작품의 특징이다. 사진 이길이구 갤러리

강준영 작가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유년 시절 그래피티 문화와 장-미셸 바스키아의 강한 붓 터치에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조했다. 좋은 의미를 담은 문구 또한 작품의 특징이다. 사진 이길이구 갤러리

- 드로잉 작품도 멋지던 걸요.
“물감을 입힌 최종 단계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거치는 무수한 과정을 무척 특별하게 여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치 혹은 드로잉 작업이 매우 중요해요. 작품의 단초를 제공하니까요. 작가 초창기 시절의 드로잉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 작품에 더한 영어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좋은 의미로 가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선의 시작은 슬픔이었어요.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의 암선고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슬픔을 돌파하는 방편으로 좋은 글귀와 문구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됐습니다. 나와 같은 슬픔을 지닌 이들에게 희망적이고 건강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며 작품의 메시지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요.
“결혼 이전의 작품에서는 개인의 슬픔을 승화하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그 이후에는 나 자신뿐아니라 그 주변 더 나아가 사회까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은 관계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걸 매 순간 느낍니다.”

- 최근의 관심사는 무언가요.
“작가로서는 제가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시대의 이야기를 저 나름대로 해석해 풀어나가고 있다 생각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내년에 학부모가 되기 때문에 이 아이를어떻게 훌륭하게 키워낼지에 대한 고민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큰 관심사입니다.”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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