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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석무의 실학산책

다산 정약용,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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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놀랄 만한 글 한 편을 읽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쓴 독후감인데, 네 아이를 키우는 주부라는 분의 글이다. ‘관점의 차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 구절을 인용하고는 다산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내는 글솜씨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189쪽)

유배살이 10년째인 1810년 봄, 다산이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써준 ‘신학유가계(贐學游家誡)’의 한 구절이다. 서평자는 이 글에서 다산이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히 진단한다.

유배 중 아들에 보낸 편지 뭉클
“하늘로 치솟는 가을매 기상을”
불행한 운명 탓하며 살 것인가
고난 속에서 위대한 학문 일궈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 선사가 그린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도’. [중앙포토]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 선사가 그린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도’. [중앙포토]

“정약용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에게 세상이란 어떤 곳이었을까. 세상은 그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형벌과 고난을 선사했다. 한때 임금에게 충성했던 자로서 임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고난은 그에게 가혹하고 냉정했다. 그가 인생의 어느 날 갑자기 만난 불운한 운명을 탓하며 원망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망과 불평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보내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지 않는’ 자였다.”

다산은 아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우주도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라는 교훈을 내렸는데, 서평자는 다산 자신이 바로 그런 생각으로 살아간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판단은 그렇게 옳았다. 다산의 일생을 관찰하고, 그처럼 고달픈 유배살이에도 밤낮 구별 없이 공부하며 500권이 넘는 학문적 업적을 이룩해낸 사실을 파악한 사람만이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다.

무려 18년이라는 고난의 세월을 오히려 학문할 기회로 여기고 서럽고 슬픈 비애의 생각보다는 오히려 흔연히 기뻐하며 읽고 쓰는 일에 삶을 바친 그의 용기와 좌절을 모르던 인간 다산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다산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다산 사후 86년째에 완료된 『사암선생연보』라는 책이다. 현손(고손자)인 정규영이 1921년 완성했다. 집안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산 자신이 기록한 『다산연보』를 참고하며 일생을 기술한 자료이다.

“무릇 6경 4서의 경학에 있어서, 『주역』은 다섯 번 원고를 바꾸었고 그 나머지 9경(九經)도 두 번씩 원고를 바꾸었다. 공(다산)의 탁월한 식견에 부지런하고 민첩함을 겸하여 이 큰일을 완성했다. 저술이 풍부하기로는 신라·고려 이전이나 이후에 없던 바이다”라는 연보의 발문이 있다. 240권이 넘는 4서 6경에 관한 그의 방대한 경학 연구서를 그런 공력을 들여 저술했다는 것이다. 필사해서 저작한 책이니 어찌 그 일이 간단한 일인가.

다산은 경학 외에도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경세서와 2500수가 훨씬 넘는 시작(詩作) 또한 상상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다. 세상을 원망하며 자신의 불운을 탓하느라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그런 고난의 세월에 나라와 백성을 살려낼 실학의 학문을 이룩해낸 위대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가벼운 재해를 당해도 신세를 탓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기 쉽고, 조금 더 심하면 자살해 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훨훨 벗어나 위대한 용기를 잃지 않았으니, 그 얼마나 탁월한 삶인가.

연보 발문의 마지막 구절은 다산을 더욱 그리워하게 한다. “이미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하여 다 이룩했다고 여기지 않았고, 이미 늙었다고 하여 조금도 해이해지지 않았으니, 아! 지극한 덕행과 성대한 학문이 아니겠는가!(至行盛學)”

이런 지행과 성학이 있었기에 아들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잠언이자 금과옥조의 격언으로 응축된 내용이다. 서평가는 다산에게 배워야 할 한 가지를 강조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런 관점의 차이를 이끌어낸 그의 생각들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는 식견도 부족하고 부지런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주름잡고 있다. 이런 세상일수록 그런 용기, 그런 근면, 그런 경세가인 다산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