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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호남 클래식 이끄는 두 지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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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류태형
류태형 기자 중앙일보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 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목포시립교향악단 40주년 기념 공연을 봤다. 예술감독 정헌이 지휘봉을 잡고 목포 출신 피아니스트 박연민이 모차르트 협주곡 9번으로 포문을 열었다. 영롱한 타건이 전면에 나서고 악단은 뒤로 물러섰다. 2부 말러 교향곡 5번은 예상을 뛰어넘는 호연이었다. 정헌은 두텁게 선율이 밀려드는 해석을 들려줬다. 1, 2악장에선 거대한 슬픔에 몸을 맡기고 홍수 속에서 질주하는 듯했다. 포근하면서 불안한 3악장과 천상의 음악 같으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아다지에토를 지나 가뿐해진 듯한 5악장까지 번스타인을 연상시킨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펫을 위시한 금관악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지휘자 정헌. [사진 목포시향]

지휘자 정헌. [사진 목포시향]

지휘자 정헌(41)은 영남대 음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공부했다. 유럽 현지에서 동시대 음악 앙상블을 이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앙상블 텐텐’을 조직해 현대음악을 연주했다. 재작년 목포시향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목포시향보다 7년 앞선 1976년 창설된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홍석원(41)이 지휘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은 보기 드문 무대였다. 스네어드럼과 팀파니가 광포하게 날뛰고 트럼펫이 절규하는 가운데 심벌즈의 날카로운 타격음이 현으로 옮겨와 일사불란하게 쌀쌀맞은 냉소를 토해냈다.

지휘자 홍석원. [사진 광주시향]

지휘자 홍석원. [사진 광주시향]

광주시향의 활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하고 11월 발매한 임윤찬 협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등을 수록한 음반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직도 여러 온라인 판매 사이트의 클래식 음악 차트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2021년 홍석원 지휘 광주시향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협연했던 임윤찬은 첫 리허설 때부터 단원들의 정신과 에너지에 감동했다며 기꺼이 첫 음반을 광주시향과 함께 녹음했다.

홍석원 예술감독은 서울대 음대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롤 주립극장 수석지휘자와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음악감독을 거쳐 재작년 광주시향에 왔다.

정헌과 홍석원, 유럽에서 돌아온 1982년생 동갑내기 지휘자들의 지휘봉에 맞춰 호남 클래식 음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로 대표되는 남도 가락으로 예향이라 불려온 호남이지만 유독 클래식 음악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가운데 통영국제음악제와 부산국제클래식음악제가 있는 경남,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있는 강원,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있는 경북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광주와 목포의 오케스트라들이 시동을 걸고 나아가는 요즘 호남의 클래식 인프라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호남 지역이 내실 있는 페스티벌과 클래식 전용 공연장, 사랑받는 오케스트라가 있는 클래식 음악의 예향으로도 자리매김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