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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남매정치 대이은 김정은, 이번엔 10세 딸 내세운 가족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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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령과 딸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의 여동생 사랑은 남달랐다. 김정일 위원장은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라며 이복동생들의 견제를 받았다. 빨치산 출신들의 도움으로 ‘평양 치맛바람’으로 불렸던 김일성 주석의 둘째 부인 김성애의 ‘바람’을 막아낸 그에게 여동생 김경희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혈육이다. 장성택(2013년 처형)과 연애를 반대했던 아버지(김일성 주석)를 설득해 결혼을 성사시킨 것도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장성택이 ‘한 눈’을 팔면 ‘혁명화’를 보냈다.

1971년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집행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경희는 오빠의 후광 아래 노동당 핵심으로 한 걸음씩 성장했다.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당 경제정책검열부장, 경공업부장을 맡았다. 북한의 최고정책결정 기구인 당 정치국 위원도 역임했다. 김정일 시대 북한의 남매 정치는 그렇게 진행됐다.

계모 바람 차단한 김정일
집권 후 여동생과 남매정치
김주애 등장은 세습 암시
풍족함 경험시키는 게 먼저

김정일, “마누라는 촌뜨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7일 딸 주애와 체육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김여정 당 부부장 뒷 줄 맨왼쪽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7일 딸 주애와 체육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김여정 당 부부장 뒷 줄 맨왼쪽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권좌가 3대로 이어지는 동안 퍼스트레이디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1949년 사망한 김 주석의 첫 부인 김정숙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머니’로 추앙받을 뿐이다. 언제나 조명은 최고지도자와 후계자, 공주 등 김씨 일가의 혈통이다. 최고지도자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 시절을 포함해 부인을 공식 석상에 등장시킨 적이 없다. 홍일천,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 등 ‘여인’이 여럿인 데다, 부인의 외부활동을 마뜩잖아했다는 후문이다.

78년 납북돼 김정일 위원장을 사적인 공간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영화인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김정일은 부인을 ‘촌뜨기’라고 불렀다”며 “‘마누라는 그저 집안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게 제일’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신상옥, 최은희 『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

김정일 위원장의 본처로 알려진 김영숙과 딸 설송의 얼굴을 본 외부인은 미국 국적의 친북 인사인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김정일 시대엔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관심 자체가 금기였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말년을 옆에서 챙긴 김옥 역시 기술서기(비서) 역할로, 북한 주민들에게 퍼스트레이디로 인식되진 않았다. 이 때문에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이설주)을 노동신문에 등장시키고 각종 행사에 부부 동반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북한 주민들에겐 몹시 낯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김정은 시대에도 이복형제들을 제거하고 친여동생 김여정을 자신의 아바타로 등장시킨 남매 정치가 이어졌다. 차이라면 김여정 부부장의 외형적인 보폭이 고모 김경희보다 훨씬 넓고,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다. 김경희는 정책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챙기기에 집중했다. 특히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직후 더욱 그랬다.

아버지와 달라진 김정은의 남매 정치

김여정은 당 부부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지 않게 전면에 등장한다. 오빠의 의중을 외부에 전하는 ‘입’ 역할도 한다. 한국과 미국 등 대미 정책을 총괄한다는 게 북한 당국의 설명이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사들 사이에선 “모든 길은 김여정으로 통한다”는 말이 돌았다. 김여정이 “내 생각에는”이라는 표현을 담아 발표하는 담화는 이제껏 북한의 공식 문건에서 볼 수 없었다. 김여정의 역할과 위상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딸을 공개석상에 함께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남매 정치에서 가족정치로 바뀌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딸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딸은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18일 장거리미사일 발사현장을 전하며 김 위원장이 딸의 손을 잡고 미사일 앞을 걷는 사진을 실었다. 이후엔 걸핏하면 정장을 입은 딸을 등장시키고, 지난달 25일 진행한 평양 서포지구 신시가지 착공식에선 삽을 들려 시삽하는 장면까지 내보냈다. 북한 매체는 “존귀하신”이라거나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제분”이라고 칭한다. 김경희가 58년 북한을 떠나는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환송행사에 화동(花童)으로, 고모인 김여정은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빈소에서 상복을 입고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북한이 열 살 안팎의 ‘수령 딸’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여럿일 수 있다. 분명한 건 북한 체제를 이끄는 중심세력들이 기획한 일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8일 열병식장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장면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 참가한 부대의 깃발을 사열하고, 열병식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이설주가 왼손으로 딸의 등을 떠미는 듯한 모습이다.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맞춰 공주를 등장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 아이를 김정일 위원장의 둘째로 추정하고 있다. 2013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이 평양을 찾았을 때 이설주가 출산 소식을 알렸던 그 아이, 김주애일 수 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 소식은 극비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국정원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국정원은 지난 7일 “김 위원장의 첫째가 아들이라는 첩보가 있어 계속 확인 중에 있다”고 보고한 게 단적인 예다. 10년이 넘도록 성별조차 ‘최종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와중에 미사일 앞에 수령의 딸을 등장시킨 점은 서방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한 주민들에겐 4대까지 세습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 기획일 수 있다. 39살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4대 세습을 염두에 두고 10세 안팎 ‘수령의 딸’에게 남매 정치를 맡기려는 것일까.

다음 주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김여정의 입을 통해 군사적 대응을 예고했다. 계모의 핍박과 견제를 이겨내고 권력을 잡은 김정일 위원장은 청와대 기습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등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스위스로 보내 서방의 풍족함을 가르쳤다. 김주애의 최근 행보가 남매 정치의 시작이라면 전쟁 위기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의 풍족함을 먼저 경험토록 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주민들의 풍족함을 기획할 수 있으니까.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