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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치특집 | 소신과 패기의 정치 선보인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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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력 앞에서도 ‘아니요’라고 말한 사람”

■“이번 전당대회, 국민의힘은 민주당처럼 줄 세우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기회”
■“당내 민주주의 위기 봉착… 민심·당심은 없고 오매불망 대통령 의중만 좇아”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당의 개혁 시도를 무위로 돌리고 권력만 탐닉하는 구태 정치인들을 직격 비판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당의 개혁 시도를 무위로 돌리고 권력만 탐닉하는 구태 정치인들을 직격 비판했다.

인터뷰가 예정돼 있던 2월 10일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327호에는 망중한(忙中閑)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1차 경선(컷오프)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발표가 30분 연기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 결과를 듣게 됐다. “컷오프 통과하셨습니다.”

선임비서관이 결과를 알려오자 허은아 의원은 두 주먹을 불끈 내쥐면서 결의를 다졌다. 그는 혁신후보 4인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이 모두 통과됐다는 소식에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천아용인은 이번 3·8 전당대회에서 윤심에 반격을 가하고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연대했다.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전당대회 다음 날 ‘혁신의 바람, 윤심(尹心)에 가로막히다’라는 제목이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켜낼 가치는 지켜내면서 혁신할 것은 혁신해야 건강한 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핵관, 권력에 취해 국민 공감 능력 상실했다”

 혁신후보 천아용인 (천하람·허은아 ·김용태·이기인) 4인은 전당대회에 깊숙이 관여하는 윤심에 반격을 가하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연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혁신후보 천아용인 (천하람·허은아 ·김용태·이기인) 4인은 전당대회에 깊숙이 관여하는 윤심에 반격을 가하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연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사람의 언어는 그의 사고를 반영한다. 허 의원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기자가 쓰는 단어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미의 단어로 정정해줬다. 언론과 주류가 규정하는 언어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고수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그가 비주류의 길을 자처한 것은 그의 말대로 “당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이준석계 대표 정치인으로 꼽히는 허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난 후 동대문 장안구로 이사해 부지런히 지역구를 닦아왔음에도 12월 28일 김경진 전 의원에게 밀려 당협위원장 공모에 탈락했다. 이후 강하게 반발하면서 원내에서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정치인들에게 “다음 공천 받을 생각없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냐”라는 식의 발언을 듣기도 했다. 이에 허 의원은 “윤핵관은 권력에 취해 국민을 잊고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며 “그들의 특권 의식과 일방주의적 폭력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위원 후보로서 본인의 경쟁력을 진단해본다면?

“힘 앞에 쫄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이 힘 있는 이에게 줄 서고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예’라고만 답할 때, 저는 권력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했다.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전달했던 점이 긍정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출마 의사를 밝히며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씀드렸다. 보수는 지킬 건 지키면서 개혁해나가는 건강한 정당이어야 한다. 결국 전당대회 승리뿐만 아니라 총선 승리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보수 100년 집권이라는 장기 플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당에는 젊은 세대가 적다. 이번 선거인단만 봐도 당내 1020세대가 7%뿐이다. 저도 50대지만 능력 있는 3040세대가 뛰어다니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우리 당의 미래가 있다. 세대교체가 시대정신이다.”

전당대회에 윤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자유와 공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지금은 오매불망 누군가의 의중만을 좇고 있다. 민심과 당심이 없다. 윤핵관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간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면 그 어떤 가치를 지향한 게 아니라 권력을 지향한 것이다. 이들이 걷는 길은 우리 당의 길이 아니다.”

친윤 그룹이 줄 세우기 하고 있다는 논란도 있다.

“작금의 상황에선 민주당이 ‘국민의힘도 똑같다’고 말하면 반박할 말이 없다. 민주당의 경우 그야말로 이재명 독재당이지 않나. 완전히 ‘이재명과 그 일당들’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우리가 민주당과 달리 줄세우기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기회다. 이번 대회에서 허은아가 당선되는 것이 그래서 의미가 있다.”

김웅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허 의원이 윤핵관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식의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흑색 선전을 펼쳤다고도 했다. 당내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말하지 마라’, ‘페이스북질 하지 마라’, ‘조용히 있어라’부터 ‘그렇게 해서 공천을 어떻게 받겠냐’, ‘그러다 찍힌다’는 겁박까지 입에 담기 어려운 유언비어나 명예훼손에 가까운 말도 많았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고 법적 대응도 고민했지만 당의 미래를 위해서 참고자 한다.”

“의원총회 때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받아”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도 그렇고 지금 국민의힘의 상황이 정치판 [더 글로리] 같다는 말도 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두려워서 김웅 의원과 상의했던 것이고, 김 의원도 답답한 상황에 나름 순화시켜서 말한 것 같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저한테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제가 두려워할 것 같다고 생각하셨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럴수록 우리 당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도 말했다.”

허 의원은 2월 2주 차에 진행된 대통령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 간의 오찬 자리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다른 의원이 ‘왜 오지 않았느냐’며 물어와서 해당 일정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친윤 그룹에 낙인찍힌 허 의원은 그야말로 ‘당내 아싸(아웃사이더)’였다.

원내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15명 정도 된다. 민주당에도 있다. 컷오프에 통과하고 나니 문자가 오더라. 오히려 다선 의원들이 당내 상황에 보다 중립적이고 격려도 많이 해준다. ‘버텨야 한다’는 식으로 조언을 준다. 사실 악수만 해도 눈빛에서 알 수 있지 않나.”

이번 선거에서 과거 음주운전 전력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우선 과오에 대한 질문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일은 16년 전 일이기는 하나 분명히 잘못한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은 잘못이다’는 생각과 더불어 더 무게감을 느낀다. 3년 전 정치에 투신하겠다고 결정하고 난 뒤 나를 영입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말한 게 그 문제였다. 당의 미래를 준비하러 온 사람이 당에 누가 되면 안 되지 않겠나. 그런데 당에서 나를 받아준 것이고 나는 3년간의 의정활동으로 화답했다. 언론에 숨긴 적도 없고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하면 늘 사과해왔다. 다만 말로만 사과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에 상응하는 내 행동을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당이 ‘도로 한나라당, 도로 경로당’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폐쇄적인 기성정치의 벽에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나는 국대다(공개 토론 배틀)’라든지 PPAT(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라든지 여러 시도들을 통해 당이 변모하고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세대 갈등, 영·호남 갈등도 없애고 중도 확장성을 가지고자 당이 시도했던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갔다. 다만 우리 당에도 여전히 희망은 남아있다. 굴곡이 있으면서도 큰 그림을 봤을 때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이번 컷오프에서 혁신후보 4인이 통과했고, 여기에서 변곡점을 만들어 반등의 ‘성공 곡선’을 그리겠다. 정권교체는 대통령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기득권 세력들이 한 것도 아니다. 당원과 국민이 바꿔준 것이다. 당원들이 분명 올바르게 평가해줄 것이라 믿는다.”

“탈당하거나 신당 창당에 참여할 생각 없다”

전당대회가 과열되는 데는 결국 차기 총선 공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윤심이 미는 후보가 된다면 비윤계 의원들의 다음 공천이 불명확해지는 상황 속 신당 창당 이야기도 나온다.

“기득권 구태 정치인들은 권력 지형이 바뀌어서 본인들이 권력에 줄 서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탈당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는 탈당하거나 신당 창당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공천 하나만 생각했다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다. 이 당을 바꾸고 싶다. 지금껏 당의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이미 훌륭한 분들이 당에 많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갈 것이다.”

대통령과의 인연이 이 정부의 권력서열을 매기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숱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품고 가는데, 인연이 없는 다른 이들은 손쉽게 내치기도 한다.

“분명히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고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부에 입성한다면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겠다. 지금은 ‘대통령이 설마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까’라고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년 넘게 공들여온 동대문을 당협위원장 자리가 검사 출신인 김경진 전 의원에게 돌아갔는데.

“당의 통합을 위해서 결과를 수용했지만 이건 잘못됐다. 주민들을 만나고 제가 정치하는 여러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사실 쉽지는 않다. 워낙에 친이 준석계가 낙인찍히다 보니 내 옆에 사람들이 서는 것도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지금 당에 적을 둔 사람들 누구나 그렇다.”

동대문을에서 계속 경쟁해나가겠다는 말인가?

“지금도 동대문에 사무실이 있다. 저 혼자 돌아다녀서 눈에 안 띄는지 지역주민들은 제가 이사간 줄 착각하더라. 지난 1년 동안 나는 지역구에서 최선을 다했고 설 명절에는 경로당에 인사도 다녔다. 당협위원장하고 싸우자고 달려들고 싶진 않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한 지역구에서 노력해보고서 결과물이 낙선이라면 그제서야 다른 길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그게 정치인으로서 소신이지 않겠나.”

- 글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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