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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특별 인터뷰 | 길 잃은 한국 정치 향한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국가위기 상황… 여도 야도 총선 얘기하지 말자”

■“尹 대통령,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때문이라면 민주당 원내대표라도 만나야”
■“민주당 지지율 하락은 민생정당 이미지 못 주기 때문… 총선보다 경제 챙겨야”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풀려면 서로를 인정하는 소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풀려면 서로를 인정하는 소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68) 민주당 의원은 2022년 7월 4일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됐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 여성 부의장이다. 추대된 김상희 전 부의장과 달리 김영주 부의장은 민주당 남성 의원들을 투표에서 이기고 뽑혔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만난 김 부의장은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말부터 건넸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169석 다수당인 민주당의 극한 대립 여파로 국회의 ‘정치’는 실종된 상태다. 2월 14일 국회 본관 부의장실에서 만난 김 부의장은 “선거 때 후보들은 민생정치를 외치지만, 정당 간 대립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대한민국 공공기관 중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최하위”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정치인 김영주는 국회부의장, 4선 국회의원, 민주당 중진, 비주류 등의 정체성이 포개진다. 뒤집어보면 이는 성역 없이 ‘할 말을 할 수 있는 포지셔닝’이라는 의미와 겹쳐진다. 소통의 부재, 여당의 독주, 야당의 획일화가 심화할수록 김 부의장의 소신 발언이 궁금해졌다.

국회부의장 선출 직후 “소통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갈수록 여야는 만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17대와 19대 국회에서는 여야 여성 의원들이 만나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가령 17대에서는 호주제 폐지 문제가 있었고, 19대에서도 친한 여야 여성 의원들이 모여 간담회도 열었다. 하지만 20대 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로 굉장히 경색됐다. 이후 여야 관계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국회부의장이 된 뒤 여야 여성 의원을 모두 초청하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경색된 여야 관계 더 악화

 2022년 7월 국회부의장에 선출된 직후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2년 7월 국회부의장에 선출된 직후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과거에는 아무리 싸워도 여야 정치인들이 밥은 같이 먹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겸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여야 지도부의 눈치를 보는 부분도 없진 않다. 여야 사이가 그나마 좋았던 시절에는 같은 상임위 의원들 사이에서 여당 의원이 토론회를 열면 야당 의원이, 야당 의원이 토론회를 개최하면 여당 의원이 왔다. 회의 끝나고 저녁에 밥을 같이 먹으며 소통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임위원장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없어졌다. 여야가 같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많이 없어진 것이다. 법안소위, 상임위 전체회의, 국감을 해도 해당 상임위원장이 돈이 없으니 (여야 의원 간 비공식 회동) 기회가 별로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문재인 대통령 때도 여야 소통은 희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을 청와대에 초청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야당의 지도부는 만났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조차 만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이라면, 원내대표단이라도 불러서 소통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

김 부의장은 국회 지도부 자격으로 윤 대통령과 만났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장단을 용산 대통령실 만찬(2022년 8월 19일)에 초대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당시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을 때였다. 내가 ‘대통령 지지율이 더 높았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라.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게 어떻게 답변했나?

“‘지금 국회의원 선거가 3개월 남았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낮으면 제가 뒤돌아서 웃겠지만, 지금은 국력이 있어야 할 시기’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60% 이상의 지지율로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국격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윤 대통령이 ‘사회적 대화’를 했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대통령이 실행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의 예를 든다면 무엇일까?

“주52시간 근무제나 탄력근로제 문제 등 노동법, 근로기준법 관련 사안은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그런데 (국회를 패싱하고) 대통령실에서 (노동계와) 소통하지 않으면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조합이 없는 단체와의 사회적 갈등만 높아진다고 말씀드렸다. 하루라도 빨리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한자리에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출범을 요청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며 IMF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지 않나.”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는 장관급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내정했다. 김 위원장의 ‘이념’이 워낙 선명해 노동계와의 대화가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있다.

“내가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았을 때 주52시간 근무제를 관철했다. 경사노위에서 계속 설득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게 ‘경사노위를 빨리 구성해서 갈등 있는 노동 의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대통령이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왜 우리는 경사노위 위원장을 안 뽑냐’고 묻더라. 그러니까 비서실장이 ‘지금 절차 진행 중입니다’라고 하더라. 그랬는데 (인사 결과를 보니) 그렇게 됐더라.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선임 후 일어난) 그다음 일은 내가 얘기하지 않겠다.”

“정부여당이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니…”

 거리로 나간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자들. 한국 정치의 극단적 분열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사진:연합뉴스

거리로 나간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자들. 한국 정치의 극단적 분열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사진:연합뉴스

김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2017년 8월 14일~2018년 9월 21일)을 역임했다.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문 정부의 ‘철학’을 담은 정책을 실행했다. 지금까지도 진영에 따라 극단적 평가가 나오는 정책을 집행한 데 대해 김 부의장은 “우리나라 노동자의 최대 관심사는 월급과 노동시간이다.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3개월→6개월)은 계절산업인 우리나라 IT·게임 산업을 위해, 주52시간 근무제는 대한민국 국민과 노동자의 과로사 없는 행복을 위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얘기를 해보자. 윤 정부의 실책이 적지 않음에도 왜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취하지 못할까?

“민주당은 169석 거대 야당이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치 흐름으로 가지 않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경제다.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전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강한 반응 아니었겠나?”

성장률 하락, 고용 침체, 물가 상승 등 경제 상황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데도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으니 문제가 더 심각한 것 아닌가?

“국민이 볼 때 우리 야당 대표(김 부의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의 사법리스크가 더 크게 보이는 거다. 먹고사는 민생 문제도 처리하고, 사법리스크는 그것대로 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하는데, 국민한테는 원 트랙(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응)으로 가고 있는 모습만 비치고 있다. 이것에 대해 국민께서 실망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다’는 풍자가 시의성을 얻고 있다. 민주당의 다양성이 퇴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시민단체든 법조인이든 다양한 구성원이 당에 들어올 때 토론도 활발할 수 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처럼회’를 만들어서 ‘우리가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 ‘뭐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야당을 야당답게 인정하지 않는다. 싸울 수밖에 없는 이런 정치 구조 속에서 다양성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김 부의장은 서울신탁은행 실업농구단 선수 출신이다. 은퇴 후 은행원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은행에는 남행원·여행원이 아니라 일반행원·여행원으로 (분류해) 부르더라”라고 회고했다. 은행 5년 차가 됐지만 신입 남성행원보다 급여가 적었다. 여성 행원을 위한 승진·출산·육아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같이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김 부의장이 전면에 섰다.

여성단체, 노동단체와 연대해 ‘남녀고용평등법’의 국회 청원을 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다. 영남=보수당, 호남=진보당으로 도식화된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고심하던 김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며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영입했다. 당시 김 부의장은 비례대표 39번을 받았지만, 2000년 총선에서 당선 순번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등포의 ‘생활정치인’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정책 국회와 의원의 외교활동이 활발한 국회를 지향한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정책 국회와 의원의 외교활동이 활발한 국회를 지향한다.

정치를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부의장이 금융노조를 할 때 노 대통령이 고문변호사였다. 김 부의장은 2002년 대선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 2004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분야별 전문가로 비례대표 공천을 부여하는 정치개혁을 실험했다. 그 덕분에 처음 국회에 입성한 김 부의장은 “돈 없는 사람도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며 노 대통령을 평가했다. 이후 김 부의장은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해 2012년, 2016년, 2020년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그는 자신의 당선 비결로 “생활정치”를 꼽았다.

당시 비례대표 의원을 하다가 영등포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7년 12월 영등포로 이사를 왔다. 아이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나올 때까지 다 여기서 학교를 다녔다. 금융노조 하면서 노동 활동만 해서 몰랐는데 처음 이사와서 보니까 너무 불편한 게 많았다. 공업·약품 공장 지역이었고 악취와 소음이 심했다. 주거환경이 좋지 못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 뒤, 비례대표의원 신분이었지만 영등포 지역 초등학교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다. 18대 국회에서 낙선하고,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매년 했다. 주민의 요청을 받는 생활정치를 하며 악취방지법, 소음·진동관리법을 알게 됐다. 악취나 소음, 진동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지자체가 나서 시정하도록 법 개정을 했다.”

지역구민들의 반응이 피부에 와닿았나?

“농구와 정치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 정치도 말로 공약만 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주민들이 더 잘 안다.”

무엇보다 생활정치가 절실한 시기다. 전기료와 난방비 가격 급등에 관한 김 부의장의 생각은 어떤가?

“여야 모두 국민에게 솔직해야 한다. 정부는 전 정부를 탓하지만, 그런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장기적으로 경제를 망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단기적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가 개입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면 전기료와 난방비가 다시 낮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전이나 가스공사의 경영이 어려울 때는 예비비나 추경 등 재정 투입을 해야 한다. 무너지는 중산층과 서민, 차상위계층,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난방비 등에 지출을 많이 하면 소비할 수 있는 잉여자금이 부족하게 된다. 그러면 소비위축에 따른 내수경기 침체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총선은 멀고 물가는 가깝다”

하반기로 유보되긴 했지만 버스, 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도 가시화된 상황이다.

“물가가 치솟으면 분노의 민심이 생긴다. 정치는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 이 와중에 집권여당이나 야당은 2024년 총선에 가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선거는 2~3개월 안에 표심이 바뀔 수 있다. 그러니 국가위기 상황인 지금은 ‘총선 얘기하지 말자’고 여야에 당부하고 싶다.”

국회부의장으로서 ‘의원외교’를 강조해왔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도 의원들이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유치 경쟁 일선에서 각국의 한국대사관·외교부·산업통상부·코트라 직원들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별 의사결정 권한이 있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인사를 만나기 어려워 난관에 봉착해 있다. BIE 회원국은 총 170개국이다.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 등 회원국이 많이 포진된 대륙에 의원들이 나가 전략적 유치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의회외교포럼과 의원외교친선협회 지원을 활성화할 것이다. 저 역시 국회 부의장으로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세르비아 대통령, 헝가리 국회의장, 몽골 국회의장 등을 만나 엑스포 유치를 홍보해왔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 녹취 정리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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