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부른 전철의 태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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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철승객들이 기관사와 차장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하면서 벌인 지연운행 항의소동은 불행한 사태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안전사고 문책으로 동료가 입건된 데 대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태업을 하면서 항의한 철도청소속 기관사 및 차장들과 사태가 이쯤 됐는데에 만 하루가 넘도록 적극 대처를 하지 않은 소속기관의 무사안일행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이면 정원의 2∼3배 승객을 억지로 태워 30초 만에 역을 떠나야 하는 기관사와 차장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두 명이 억지로 밀어 넣다시피 승객을 태우고 문틈에 옷자락이라도 걸리면 찾아내 바로 태워야 하는데에 그 시간은 짧을 수도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승객이 사고를 당해도 면책이 된다고는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한꺼번에 타는 수천명의 승객은 어차피 기관사나 차장을 믿고,그들은 승객을 안전하게 실어나를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작업 여건이라도 안전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원인이 전철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철도청에 있다면 그같은 구조적 문제점의 개선을 철도청에 요구할 권리는 있을지언정 시민의 출퇴근길 발을 묶고 시위를 하는 항의방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엉뚱하게 승객을 볼모로 했다는 점에서 시민이 분노했고,방법은 좋지 않았지만 그 분노가 폭발한 불행한 사태를 빚은 셈이다.
22일 새벽부터 태업은 철회됐다니 불행중 다행이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정당성을 잃은 불만표출은 당사자간의 문제해결에서 오히려 시민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6·29 이후 곳곳에서 터져 나왔던 조직내부분쟁에서 항상 공공성이나 공익을 외면한 채 바깥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싸운 쪽이 소수로 몰리게 된 전철을 되새겨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수도권 출퇴근 인구 수송의 대종을 맡고 있는 철도청의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태도를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7일엔 옷자락이 문에 끼여 승객이 안전사고를 당했고 그 결과 차장이 입건됐을 때 철도청은 당연히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서둘러야 하지 않았을까.
기관사와 차장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기로 결의하고,20일부터 수도권 전철이 지연운행되면서 시민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소속기관인 철도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서울시가 관리운영하는 지하철에서는 푸시맨(Push­man)제도를 도입,만원승객의 안전사고에 대비해왔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동감지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2㎝ 이내는 기계적으로 감지되지 않고 있고,그래서 차장 1명이 뒤에서 육안으로밖에 볼 수 없도록 돼 있는 전동차에서 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승객이 몰리는 러시아워에 대비하지 않은 철도청은 이번 시민들의 폭력적 항의소동에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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