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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동맹 70년, 북핵 문제 더 우선적으로 풀어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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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래를 열어가는 한·미동맹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한·미 동맹은 오는 10월 70주년을 맞는다. 현대 국제정치사에서도 드문 기록이다. 2차대전 이후 70년 이상 생명력을 유지·강화하고 있는 동맹은 미·영 동맹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제외하면 미·일, 미·호주, 한·미 동맹 정도다. 이들은 미국의 동맹 체제 내에서도 가장 성공한 동맹이다. 지역 평화와 안전의 ‘토대’ ‘주춧돌’ ‘닻’ ‘핵심축’이라는 표현들이 이를 상징한다. 태국·필리핀도 미국 주도의 ‘중심축과 바큇살’ 동맹 체제의 일부로 간주하지만 결속 범위와 진화 속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냉전 기간 독자적으로 운용되던 이들 동맹은 탈냉전을 거쳐 신냉전 시대로 진입하면서 동맹 자체 결속력 강화는 물론 동맹 간 연계를 통해 지역·글로벌 역할을 크게 증진하고 있다. 지정학적·지경학적 환경 변화와 복합 위기가 국경·지역을 넘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 혼자 또는 개별 동맹만으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여러 동맹체제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
신냉전 시대 맞아 동맹 간 연계 통한 지역·글로벌 역할 증진
양국 정상회담 통해 70년 이후를 내다보는 전략적 접근 필요
확장억제 실행력 키워가야…아시아 핵기획그룹 창설 바람직

개별 동맹 넘어 동맹 간 연대 시대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중국의 공세적 부상과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 무장과 핵 선제 사용 독트린 등 지정학적 도전을 필두로 에너지·식량 안보, 첨단 기술 경쟁,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 새로운 경제안보 과제의 등장은 통합적 대응을 요구한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국제질서가 변곡점에 처해 있다는 인식 아래 다자주의와 자유주의 연대, 규범 기반 국제질서와 통합적 억제를 축으로 개별 동맹 체제 강화뿐 아니라 동맹 간 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심축(hub)을 받치는 바큇살(spokes)에 비유했던 동맹 파트너들을 보다 수평적 관계로 격상하고 바큇살 간 연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NATO의 ‘신전략 개념’ 채택, 쿼드(미·일·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 정상회의, 오커스(미·영·호주 3개국 안보 파트너십),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한·미·일·대만 반도체 협력체) 창설, 미·일·호 전략대화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 등 연대 구축은 그 실현 과정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5개 중기 전략보고서(국가안보, 국방, 핵 태세. 미사일 방어, 인도태평양)에서 ‘통합적 억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동맹국 및 핵심 우방국과의 협업 체제가 그 핵심이다.

한국도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한·미·일 프놈펜 정상회의는 3국이 과거처럼 북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기술, 지역·글로벌 차원의 다양한 도전과 복합 위기에 포괄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미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인도·태평양과 유럽·대서양이 안보·무역·기술 분야에서 운명적으로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했다.

미·일, 미·호주는 한·미동맹 선행지표

오늘날 미국의 핵심 동맹 관계가 강력한 생명력을 갖기까지 동맹 파트너들이 보여준 응집력·적응력·회복력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끝없는 변환을 통해 동맹을 현대화하면서 갈등·이견을 극복해 왔다. 특히 미·일 동맹과 미·호 동맹의 양자, 지역·글로벌 파트너십 진화 과정과 속도는 한·미 동맹의 장래를 예견하는 데 참고가 된다.

미·일 동맹은 지난달 미·일 안보협의위원회(2+2회담) 공동성명에서 보듯 “양국의 국가안보전략과 방위전략이 ‘통합적 억제’를 증강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으며, 그 비전, 우선순위와 목표가 전례 없이 일치” 되는 수준까지 격상하였다. 2013년 일본 국가안보전략서는 북한만을 안보 위협으로 지목하였으나, 이번 개정판은 중국을 미·일의 공동 우려 대상으로 추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그 범위를 러시아로 확대했다. 공동 방위 영역도 우주까지 넓혀졌다.

이제 미·영 동맹 수준에 근접하게 된 미·일 동맹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1951년 안보조약 체결로 출범한 미·일 동맹은 1960년 안보조약 개정과 72년 오키나와 반환 등을 거쳐 2015년까지 세 차례의 미·일 방위지침 개정과 지난해 국가안보전략 개정을 통해 일본의 역할 확대를 추진해 왔다. 최근 결속력이 강한 파이브 아이즈(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기관 공동체)에 일본을 포함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미·호 동맹은 1951년 앤저스(미·호주·뉴질랜드 공동 방위체)에서 출발하여 85년 양자 동맹으로 전환됐다. 호주는 1941년 이후 미국이 개입한 거의 모든 국제 분쟁에서 미국을 지원해 왔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테러, 대중국 정책 등 새로운 도전에 대한 치열한 국내 논쟁을 통해 정권과 관계없이 지역·글로벌 역할을 증대하는 대외 전략을 선택했다.

동맹의 협력 범위도 대양주 지역에서 동남아, 동아시아, 아·태, 인·태 및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호주의 전략적 이익을 역내·글로벌 차원의 평화·번영에서 찾은 결과 미·호주 동맹은 전통적 군사 동맹으로부터 전략적 이해·가치를 공유하는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으로 확대됐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 우선순위 높여야

한·미 동맹도 1953년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70년간 시대 변화에 부응하여 군사동맹에서 경제안보, 과학기술, 가치동맹으로 꾸준히 진화해 왔다. 2009년 ‘포괄적 전략 동맹’에 합의한 후 14년간 채택한 주요 공동성명을 보면 한반도를 넘어 지역·글로벌 의제가 상당히 늘어났다. 동맹 협력의 지역 범위도 동북아, 아시아, 아·태에서 인·태와 글로벌로 확대되었다. 특히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에 합의하고 지난해 말 인·태 전략을 발표하여 협력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였다.

한·미 간 전략적 이해의 확장은 대전환 시대의 동맹 현대화 추세와 부합한다. 미국과 NATO의 ‘360도 전략’이나 호주·일본의 인태·글로벌 전략과도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반면, 핵심축(linchpin) 역할이 동북아를 넘어 지역과 세계로 확대됨에 따라 탈냉전 이후 NATO·호주·일본이 겪었던 것처럼 동맹 강화와 역할 증대에 따른 다양한 함의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윤 대통령은 양자 방문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최소 2회 방미를 포함해 수차례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는 향후 미래 전략과 로드맵이 될 것이다. 지난해 5월 양국 정상회담 합의의 후속 조치는 물론 동맹 70년 이후를 내다보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적 우선순위 설정과 조화가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북한·북핵, 양자, 지역·글로벌 문제가 상호 추동하고 있음에도 우선순위에서는 서로 간극이 있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지난해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북한에 대해 간략한 언급에 그쳤다. 실존적 위협인 북핵 문제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중국·대만 문제 못지않게 미국의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달간 확장 억제 분야에서 진전이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10년 이상 가는 동맹 지침 마련해야

둘째, 우리의 지역·글로벌 역할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역할을 확대할 수 있을지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행동하는 동맹’ 전략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기회와 함께 부담도 수반된다.

셋째, 국내적으로는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력에 상응하는 중견국 역할을 하는 것이 자유·평화·번영이라는 전략적 이익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확산하여야 한다. 미국과 동맹 파트너와 가치 공유국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해 역할을 분담해 나가는 격변의 시대에 진입하였음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2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시대 전환’(Zeitenwende) 선언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넷째, 한·미 동맹 70주년이라는 계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미래를 내다보는 이정표적 메시지와 합의가 나왔으면 한다. 행동 계획 중심의 공동 문건으로 구체화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꼭 포괄적이 아니더라도 몇 가지 핵심 분야에 초점을 맞춰도 된다. 미·일, 미·호 동맹 사례처럼 정부 교체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일관되게 이행되는 향후 5년, 1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지침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을 것이다.

다섯째,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서 한·미 동맹 70주년이 ‘핵 동맹’ 원년으로 평가될 만한 추가적 조치가 나온다면 좋겠다. 확장억제의 실행력 제고나 한국형 핵 공유의 연장선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산하 고위급 채널이나 별도의 고위 채널(한·미 핵기획그룹(NPG) 등)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에서도 가능한 다양한 핵 옵션의 타당성을 검토해 볼 만 하다.

더 나아가 한·미·일·호·유럽의 전직 최고위 인사들과 국내외 연구소들이 제안한 아시아 NPG 창설도 좋은 구상이다. NATO의 NPG에는 전술핵이 배치되지 않은 다수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일·호주는 이미 미국과 양자 협의체가 있어 3자 또는 4자화 하는 것은 정책적 의지에 달려 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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