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랜드 미식가 박이담 기자입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큰 관심을 받으며 지난달 성황리에 마무리됐는데요.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자 대표 선수들이 들고 나타난 태극기가 화제였어요. 지금은 유행어가 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슬로건 ‘Impossible is Nothing(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이 적혀 있었거든요. 덕분에 아디다스는 국가 대표 유니폼을 후원하지도 않았는데 뜻하지 않은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오히려 실제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 스폰서십 브랜드인 나이키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남겼죠.
연초에도 아디다스는 서울을 뜨겁게 달굽니다. 지난 18일 서울 명동에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서울’을 개점했는데 전국에서 몰려든 고객으로 장사진을 이뤘어요. 플래그십 오픈을 기념해 한정 수량으로 내놓은 운동화 ‘삼바’를 사려고 몰려온 겁니다. 이 운동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인기가 심상치 않거든요. 삼바는 세계의 셀럽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하면서 입소문을 탔어요. 발매시마다 품절 대란까지 벌어지고, 리셀(재판매) 플랫폼에선 가격이 치솟고 있죠. 오늘 비크닉에선 아디다스 삼바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게요.
1949년, 역사의 시작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를 만든 사람은 독일인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란 사람입니다. 그는 형인 루돌프 다슬러와 1924년부터 작은 신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업이 어려워지자 형제는 갈등을 빚습니다. 결국 48년 형제는 결별했고, 형 루돌프는 푸마의 전신인 ‘루다’를 만들었어요. 동생 아돌프도 이듬해인 49년 자신의 이름과 성의 앞글자를 따 ‘아디다스(ADIDAS)’를 만들죠. 그리고 야심차게 디자인해 내놓은 제품이 바로 ‘삼바’입니다. 지금은 패션화로도 즐겨 신지만, 당시엔 축구화로 개발했어요. 축구선수들이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에서도 잘 뛸 수 있도록 바닥에는 튼튼한 고무창을 붙이고, 다른 신발보다 돋보일 디자인도 추가합니다. 양 옆에 흰색 가죽을 세 줄로 박음질해요. 맞아요. 바로 아디다스의 시그니처인 삼선 문양이 탄생한 겁니다.
아돌프는 자신이 만든 신발이 더 잘 팔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묘안을 떠올립니다. 50년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을 기회 삼아, 브라질의 국민 음악이자 춤인 삼바를 이름으로 따오는 거였죠. 축구선수는 물론 축구팬까지 고객으로 만들려는 전략적 판단이었는데, 단순하지만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었어요 .
그의 전략은 적중했어요. 삼바는 단숨에 브라질 월드컵의 상징적인 운동화로 떠오릅니다. 여기에 더해, 이어진 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선 삼바를 신은 독일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삼바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어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삼바는 다른 스포츠로도 확장됩니다. 70년대 초반 유럽에서 풋살 열풍이 불 때 풋살화로도 불티났고요. 90년대엔 스케이트보더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어요. 운동장 밖에서도 삼바의 인기는 이어져서 70~80년대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가일 스웨터, 폴로 셔츠와 함께 캐주얼 패션의 상징적인 아이템됐습니다.
삼바, 화려하게 부활하다
하지만 수십년간 인기를 누려온 삼바도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반스나 컨버스 같은 스니커즈 전문 브랜드가 새로 등장하면서 한물 간 신발로 여겨진 거죠. 하지만 2020년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식을 줄 모르는 ‘레트로(복고)’ 트렌드를 타고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웨일즈 보너(Wales Bonner) 덕을 톡톡히 봅니다. 웨일즈 보너는 2016년 프랑스 명품 기업인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가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 주최하는 ‘LVMH 영 디자이너 어워즈’에서 우승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2020년엔 디올과 협업 제품을 내놓기도 했고, 지난해엔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았죠. 그는 자신의 202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7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레게 음악 ‘러버스 락(Lovers Rock)’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과 스타일링을 선보였는데요. 이때 70년대 인기가 높았던 아디다스의 운동화가 빠질 수 없었죠. 이를 본 아디다스는 바로 협업을 제안했고, 바로 ‘웨일즈 보너 x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FW20’ 컬렉션이 발매됐어요.
여기서 삼바도 다시 태어납니다. 전통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신발 옆 삼선의 소재와 박음질 등에서 색다른 디테일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금빛으로 각인하죠. 당시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를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웨일즈 보너와 아디다스는 지금까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인기가 대단합니다.
여기엔 셀럽들도 힘을 실어줬습니다. 해외에선 켄달 제너, 헤일리 비버가 일상에서 즐겨 신어 화제가 됐고요. 국내에선 블랙핑크 제니, 김나영 등이 삼바 신은 모습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선보여 스니커즈 시장을 뜨겁게 달궜답니다.
삼바의 인기는 숫자로도 증명됩니다. 삼바는 상품이 들어오는 족족 품절 대란을 일으켜서 리셀 플랫폼에서 활발히 거래됩니다. 글로벌 리셀 플랫폼인 스탁엑스가 지난해 내놓은 ‘빅팩츠(Big Facts) 리포트’에 따르면 삼바의 리셀 거래량은 전년 대비 485% 증가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엔 리셀가가 60만원대로 치솟기도 했어요. 삼바의 정식 판매가는 10만원 내외인데 반해 6배 가량 비싸진 거죠.
오프라인까지 번진 인기
지난 18일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아디다스의 국내 최대 규모 매장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서울’에서도 삼바 열풍이 뜨겁다고 해서 직접 가봤어요. 실제로 매장 건너편 골목까지 긴 줄이 생겼더라고요. 모두 삼바를 사기 위해 대기하는 고객들이었어요. 이곳에서 만난 손현수(32)씨는 “여자친구에게 삼바를 선물로 사주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했어요. 이름을 밝히기 꺼린 박모(32)씨도 “리셀로도 삼바를 사기 어려워서 줄을 서더라도 직접 매장에서 사기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디다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공간이 삼바 덕을 톡톡히 본 겁니다.
삼바는 아디다스의 D2C(Direct to Customer) 전략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D2C는 브랜드가 자사 온라인몰을 강화해 유통 비용을 줄이고, 고객과 소통을 늘리는 유통 방식을 말해요. 아디다스는 자사 멤버십인 ‘아디클럽’에 가입해야만 삼바를 살 수 있게 했어요. 그것도 한 사람당 1족씩으로 구매량을 제한했고요. 리셀시장의 과열을 막으면서 동시에 수천명의 충성고객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그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이 과정을 불만없이 수행합니다. 그만큼 삼바의 매력이 크다는 의미죠.
삼바의 바통, 누가 이어 받을까
올해로 아디다스가 생긴지 74년째예요. 역사가 깊은 만큼 삼바 외에도 시대를 풍미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60년대에는 농구화 ‘슈퍼스타’, 70년대는 테니스화 ‘스탠 스미스’가 등장해 인기였습니다. 모두 스포츠 제품이었지만 나중엔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 받았죠.
과연 삼바의 왕좌를 이어받을 스니커즈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궁금하다면,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서울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매장 2층에 클래식 제품을 선보인 전시 공간을 마련해놨거든요. 또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포토카드 형태로 클래식 제품이 담긴 ‘아디카드’를 만들어 증정하기도 하고요. 삼바 인기를 이어 받을 후보들을 한눈에 볼 수 있죠. 제2의 삼바, 무엇이 될지 함께 지켜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