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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후 정가 전망] 여야 모두 민심 외면, 누가 먼저 박스권 지지율 탈출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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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호 08면

SPECIAL REPORT - 여의도 톺아보기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0일 구룡마을 이재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0일 구룡마을 이재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인 올해 설 민심은 그 어느 때 못지않게 중요하다. 새 정부 집권 8개월 동안의 국정 운영과 야당의 대여 투쟁, 내년 총선 전망 등을 총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정치 선행 지표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설을 맞아 가족·친지, 주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생각의 지도’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유형의 효과가 발생한다. 그동안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더 확신하거나(강화 효과),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거나(전환 효과), 아무 생각도 없다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거나(창출 효과) 한다. 어떤 효과가 대세를 이룰지가 설 민심의 향배를 결정한다.

올해 설 밥상의 화두는 무엇일까. 국민이 기대한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는지, 정권 교체 이후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국민의힘 당권 경쟁은 어떻게 전개될지, 각종 의혹에 둘러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사법적 조치는 어떻게 진행될지, 그에 따라 민주당은 과연 분열될지 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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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직전 여론의 추이는 정부와 여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조사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6%인 데 비해 부정 평가는 55%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37%로 윤 대통령 지지율과 서로 엇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여론의 공감 또한 저조하다. 한국갤럽과 디지털타임스가 지난달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현재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34.3%인 데 비해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57.5%에 달했다. 통상 공감 비율이 35% 이하로 떨어지면 위험하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용산역에서 귀성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용산역에서 귀성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여권의 내년 총선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같은 조사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지원론’은 41.4%인 반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견제론’은 52.0%로 10%포인트 이상 많았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3월 8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기존의 정치 프로토콜이 무너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대를 앞두고 18년 만에 당헌을 개정해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없앤 뒤 ‘당원 투표 100%’로 고쳤고 결선투표도 도입했다. 당장 ‘반윤’ 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SBS·넥스트리서치 신년 여론조사(지난달 30~31일)에선 100% 당원 투표 결정에 대해 ‘당대표는 당원들 의견으로만 뽑는 게 맞다(30.8%)’보다 ‘일반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게 맞다(65.5%)’는 응답이 두 배 이상 많았다.

향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설 민심, 선거 구도, 당원들의 전략적 투표, 결선투표 등이 주요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권 장악을 위한 친윤계의 잇단 밀어붙이기식 행보에 과연 설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당장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선거 예측이 쉽지 않다. 지난 14~15일 폴리뉴스·에브리씨앤알 조사에선 김기현·안철수 의원이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안 의원이 48.4%로 김 의원(42.8%)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의원이 ‘나경원 대체재’로 주목받으며 비윤 표심은 물론 총선 승리가 지상 목표인 수도권 표심을 대거 흡수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안 의원의 당내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플랜A=김기현’ 의지가 확고히 유지되는 가운데 ‘어대현(어차피 당대표는 김기현)’이 대세로 굳어질 경우 역전이 그리 쉽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새로 도입된 결선투표가 승부를 안갯속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김 의원이 절대 우위에도 불구하고 과반 득표에 실패하고 2·3위 후보 간 연대가 성사될 경우 최종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친윤계가 마련해 놓은 안전장치가 되레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4무(無) 정치’에 매몰된 채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승복은 없고 투쟁만 있다. 민생은 없고 방탄만 있다. 당내 민주화는 없고 ‘이재명 사당화’만 있다. 반성은 없고 정치 프레임만 있다.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의혹과 관련해 오는 28일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대표 수사와 관련해 ‘정치 보복, 야당 탄압’ 프레임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도 냉소적이다. SBS·넥스트리서치 조사에서도 검찰의 이 대표 소환에 대해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 목적의 수사(38.3%)’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54.5%)’라는 응답이 훨씬 많았다. 주목할 부분은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자 중에서도 30.4%가 ‘원칙 수사’ 견해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JTBC 신년 여론조사(지난달 29~30일)에서도 이 대표가 야당 대표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는 37.9%에 불과했고 이 대표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도 62.6%에 달했다.

당 지지도 역시 집권 초기 정부·여당의 잇단 실정에도 불구하고 30%대에서 정체·하락하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민주당의 현 상황에 대해 “모든 사람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방 안의 코끼리”라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여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향후 민주당의 향배와 관련해선 세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첫째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는 것, 둘째 이 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2016년 문재인 대표 때 모델), 셋째 친문·비이재명계의 탈당으로 민주당이 분열되는 것(2016년 국민의당 창당 모델) 등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이 민주당 분열의 변곡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약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고 민주당은 선관위에서 보전받은 대선 비용 430억여원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친문·반명 세력의 반격과 분당을 재촉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중대선거구제가 현실화되면 분당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더 늦기 전에 ‘민주당다움’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설을 앞두고 여론이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재 여야는 공히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거듭하며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 이후 민심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누가 힘을 받고 누가 몰락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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