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도 깔끔한 표지판 … 작지만 큰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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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세계 여러 나라의 교통표지 체계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인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진입금지 표지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작과 설치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입금지 표지판은 일방통행 길이 끝나는 지점이나, 보행자 전용도로처럼 차량 진입을 금지해야 하는 장소의 입구에 설치됩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차량을 막는 시설물이 없을 때는 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금지 방향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입금지를 지시하는 기호의 의미가 운전자에게 학습돼 있지 않거나, 표지의 설치 위치와 각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진입금지 표지는 보통 지주(支柱)형으로 설치되지만 때로는 벽이나 다른 구조물에 부착되거나, 도로교통표지판에 작게 프린트되기도 합니다. 지주형을 제작할 때는 기둥으로는 강관(쇠파이프)이, 표지판으로는 알루미늄이 사용됩니다. 기둥은 견고해야 하고 표지판은 녹슬지 않으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외부 압력을 받으면 휘거나 우그러져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1) 쇠파이프에 알루미늄 표지판을 덧대고 볼트와 너트로 조여 제작합니다.

규격화된 동일한 부품들이 표지의 크기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 진입금지 표지 같은 작은 표지판에서는 언뜻 봐도 거칠게 보입니다. 또 가로 덧댄 보강재에 빗물이 고여 쉽게 녹슬게 됩니다. 운전자는 표지판 앞면을 보지만, 시민들은 녹과 먼지 등으로 오염된 표지판의 뒷면(2)도 보게 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진입금지 표지판(3)을 보면 표지판과 지주의 결합 방식이 정교해 한 점의 금속공예 작품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뒷면(4)도 깨끗이 유지하기 쉽고, 부식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도로가 꺾이는 모퉁이에는 둥글게 휜 표지판(5)이 설치돼 있습니다. 거리의 정면과 측면, 그리고 어느 방향과 각도에서든 잘 보일 수 있게 디자인된 것입니다.

거리에 세워지는 표지판 하나에도 명품을 만드는 장인 정신이 배어 있고, 합리주의 정신이 반영돼 있습니다. 세련된 도시는 이렇듯 작은 차이들이 축적돼 이뤄집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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