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불 유용에 공직파면/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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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미국에서 단돈 1달러짜리 우표를 유용한 사실 때문에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4명이 파면당하고 5명이 징계처분 당한 사건은 공직사회의 윤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였다.
4년전인 86년 봄 미 CIA는 인근의 한 우체국에서 업무용으로 쓸 1달러짜리 우표 95장을 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우표는 인쇄가 거꾸로된 잘못된 우표였다.
이 우표를 구입했던 CIA 한 부서 9명의 직원들은 이를 발견,이것이 우표수집가들에 인기가 있다는 점을 알고 이중 85장은 뉴저지의 우표수집상에 팔았고 찢어진 한장을 제외한 나머지 9장은 기념으로 한장씩 나누어 가졌다.
물론 자신들이 돈을 내 다른 우표 95장을 사서 처리할 우편물들은 모두 발송했다.
그후 1년쯤 뒤인 87년 미 조폐공사는 자신들의 실수로 우표 4백장이 잘못 인쇄됐던 것을 뒤늦게 알고 이를 발표하자 수집상들이 문제의 우표추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 CIA가 그중 일부를 우연히 사갔다는 것이 밝혀지자 미 CIA가 자체조사에 나섰다.
우리 같았으면 『운 좋았다』『횡재 했구나』 정도로 넘겼을지도 모를 일을 근 3년에 걸쳐 조사한 끝에 지난 16일 미 CIA 웹스터 국장이 전모를 발표한 것이다.
웹스터 국장은 관련자 9명중 자체조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4명을 파면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보관중인 한장씩의 우표를 반환한 5명에 대해서는 징계처분 했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는 이들이 공직을 이용해 미 정부재산을 유용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록 1달러짜리 우표지만 정부 돈으로 구입한 이상 그것은 정부재산이라는 얘기다.
웹스터 국장은 『각자의 소득은 자신이 일한 것 만큼 얻어져야 하는 것이지 공직이라는 자리를 이용하거나 혹은 미 정부의 재산을 유용함으로써 얻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번 사건은 모든 CIA 직원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공직사회에 요구되는 도덕성 문제를 강조했다.
미 CIA는 회수된 우표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미국 정부의 재산이기 때문에 미국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편지를 동봉했다.
이번 미 CIA 사건은 청와대 특별사정반이 6개월 넘게 눈을 부라리며 각 부처를 뒤집고 있는데도 공무원들의 비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우리 공직사회의 모습을 또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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