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고장에선] 장애·受刑 뛰어넘는 '인간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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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31일 전북 군산시 옥구읍 군산교도소 '재활직업훈련관'. 오른쪽 손가락 4개가 절단된 심모(51)씨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사용할수 있는 손가락은 여섯개에 불과하지만 재단 천을 박음질하는 정성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자세다.

심씨는 "부지런히 재봉 기술을 익혀 밖에 나가면 자그마한 옷 수선점을 열어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은 지난달 말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장애인 수형자들을 위한 직업훈련시설이다. 80여명의 장애인 재소자들에게 6개월~1년동안 한식조리와 제과제빵, PC수리, 양복재단 등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훈련관은 바닥에 온돌을 깔고 세면장.목욕탕.화장실 등에는 핸드레일을 달았다. 지체 장애인들이 이동에 지장이 없도록 계단의 턱을 없애고 복도 양쪽에도 손잡이를 달았다.

특히 벽돌담을 둘러친 일반 교도소와 달리 계절의 변화와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이중 철조망만을 둘렀다. 재소자들의 재활과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장애와 수형(受刑)이라는 두가지 멍에를 동시에 극복하고 새길을 열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강의실은 고3생 교실 못쟎은 열기가 가득하다. 오전.오후 각각 3시간씩, 주당 33시간씩 펼쳐지는 수업시간은 결강생이 거의 없다.졸거나 한눈을 파는 사람도 발견하기 어렵다.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김모씨는 선생님의 지시대로 예쁜 케익을 만드느라 숨돌릴 겨를이 없고, 한손이 없는 이모씨도 PC의 자판을 두들기며 구슬땀을 흘린다.

공부에 재미를 붙인 장애인 수형인들은 최근에는 취침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연장해 달라는 건의까지 한 상태다.

제빵 강사인 조은미(40)씨는 "처음에는 재소자라는 선입견때문에 '제대로 수업이 될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실제 강의를 해보니 수강태도가 일반 수강생보다 훨씬 진지하고 적극적이라 강의시간이면 절로 신바람이 난다"는 찬사를 늘어놨다.

양복기술을 가르치는 강정구(61)씨는 "바느질은 한땀 한땀 인내와 집중이 필요해 급한 성격이 꼼꼼해지고 세심해지는 등 수양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재소자들을 돌보는 교도관들은 일반 교도소보다 몇배 힘들다. 강의도 돕고 수형생활도 함께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교도소측은 내년 봄에는 장애인 재소자들을 종교사회단체 등과 자매결연을 시켜줄 방침이다

훈련관을 맡고 있는 한은호계장은 "'꿈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이곳에서 재활기술을 잘 배워 소외.격리의 설움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산=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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