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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러브레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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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영화가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다. 1999년 개봉한 이 영화는 21세기 한국 극장가의 ‘계절 영화’가 되었고 올해가 벌써 7번째 재개봉이다. 영화는 설원에 누워 있는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의 얼굴로 시작한다.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3주기. 그가 세상을 떠난 장소인 산은 온통 하얗다. 그를 잊지 못하는 히로코는 이츠키의 졸업 앨범에 있는 주소로 편지를 보내 본다. 그런데 답장이 온다. 죽은 자에게서? 이때부터 동명이인과 1인 2역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영화 러브레터

영화 러브레터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로맨스와 죽음과 인연을 이야기한다. 섬세하게 뜨개질이 된 듯한 잔잔한 톤을 지녔지만 그 안엔 관객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것은 ‘운명적 판타지’의 요소들이며 그중 하나가 도플갱어의 모티브다. 왜 이츠키(남)는 히로코를 사랑했던 걸까. 이 비밀엔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으로 소화하는 히로코와 이츠키(여)의 설정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우체통이 있는 오타루의 어느 거리에서 조우한다. “이츠키씨!”라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는 이츠키, 그를 응시하는 히로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신은 ‘러브레터’에서 가장 신비로운 대목이며, 히로코가 로맨스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난 연인이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이츠키의 부치지 못한 편지에 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