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화끈거림|다른 증상 동반 안 하면 대수롭지 않아|윤방부 <연대 의대교수·가정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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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상이 각박해 선지, 뻔뻔스러운 사회가 돼 선지 요즘젊은이들은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옛날 우리가 자라던 때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얼굴이 붉어져 말을 더욱 못하게 되고 선생님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얼굴을 들지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현시대의 인쇄물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낯붉히게 만드는 사건들을 거의 매일 대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우리시대 사람들은 무엇인가 창피해 할 줄도 알고 부끄러워 할 줄도 하는 양심적인 사람이 더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1년 전 깔끔하게 차려입은 52세 된 여자 환자가 수줍은 듯이 진찰실 문을 열고 찾아왔다. 환자의 고민은「10대도 아니고, 세상 살만큼 다 살았다고 생각되는데 요즘 들어 자꾸 얼굴이 화끈거려 부끄러워 밖에 갈 나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병력을 자세히 들어본 결과 생리가 점차 없어지면서 생기는 폐경기 증후군이었다.
그럼 왜 얼굴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생기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환자와 같은 폐경기 증후군이다. 이는 여자가 나이 들어 폐경기쯤 되면 우리 몸의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킬 수 없게 되어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면 40∼60%의 여자들은 얼굴이나 목에 수분∼수초간 화끈거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야간에는 더욱 자주 나타나게 된다. 이는 대부분 1∼2년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나 너무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때는 에스트로겐을 주어 바로 좋아지게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몸의 신경 전달물질이 혈액 중으로 나와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그 중에서도 얼굴의 혈관을 확장시켜 화끈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신경 전달물질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낱낱이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이것들이 혈액 속에 나오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긴장을 잘하고 쉽게 당황하거나 지나치게 양심적인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는 자율신경계 자극으로 혈액속에 에피네필린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암이 있는 경우 얼굴이 화끈거릴 수 있다. 그 예로 갈색세포종이라는 암이 있는 데 이는 에피네필린을 분비시켜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면서 두통과 함께 고혈압을 일으키게 한다. 또한 카시노이드라는 장관암이 있는데 이때는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역시 얼굴이 화끈거리고 설사나 심장질환이 일어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직접 혈관을 확장시켜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것으로 뜨겁거나 매운 음식을 먹은 경우, 술을 마신 경우,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물을 먹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다른 증상이 동반되지 않은 얼굴의 화끈거림은 그리 위험한 병이 아니므로 애써 감정을 숨기려하지 말고 얼굴도 붉힐 줄 알고 부끄러움도 느낄 줄 아는 자연스러운 인간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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