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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기득권 증오 부추기는 민주당의 좌파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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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민주당의 퇴행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여러 나라의 정치는 포퓰리즘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개는 우파 포퓰리즘이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득세와 영국의 브렉시트, 오스트리아의 나치 계열 정당인 자유당과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스웨덴의 나치주의 정당 스웨덴 민주당의 부상 등 사례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포퓰리즘은 공통의 적을 필요로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공통의 적은 이민자다. 트럼프는 멕시코인들을 ‘범죄자’, ‘강간범’이라 불렀고 유럽 우파 지도자들은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경기 침체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가세하자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테러는 포퓰리즘에 내재한 불특정인을 향한 증오의 분출구가 되었다.

좌파 포퓰리즘은 기득권 세력이 나라 장악해 서민 착취한다고 주장
그런 전능한 기득권 세력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사회적 기반은 시민 반목 아닌 연대에 있어
민주당이 합리적 정책 경쟁으로 정부·여당 견제하는 게 국민의 바람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그런가 하면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pink tide: 중도좌파 정부 물결)’는 좌파 포퓰리즘이다. 2018년 멕시코의 국가재건 운동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당선, 2019년 아르헨티나 정의주의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 2020년 볼리비아 사회주의 운동당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 당선, 2021년 페루의 교사노조 지도자 출신 자유페루당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 당선, 온두라스에서 민주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 당선, 칠레 좌파 사회주의 융합당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당선, 콜롬비아에서 인간적인 콜롬비아당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당선, 그리고 마침내 지난 10월 브라질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귀환으로 중남미 핑크 타이드는 완성되었다.

포퓰리즘은 가상의 적 만들어 공격

공통의 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파 포퓰리즘뿐 아니라 좌파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좌파 포퓰리즘의 공통의 적은 기득권이다. 그들은 기득권 세력이 나라를 장악하고 서민을 착취하고 이윤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전지전능한 기득권 세력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지지자들이 그들과 싸우도록 부추기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이 이민자로 대표되는 사회적 소수 집단에 대한 ‘배제’를 표방한다면 좌파 포퓰리즘은 ‘포용’을 말한다. 그런데 그 포용은 현실에서는 가상의 기득권 세력을 향한 끝없는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전선을 긋고 지지층의 결속을 유도하는 ‘배제’의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우파 포퓰리즘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민주당은 좌파 포퓰리즘의 길을 향해 직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후보가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당 대표에 나선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나쁜 선택이었다. 대선과 당 대표 선거를 거치면서 그가 내놓은 정책들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대선 때 그의 대표 정책처럼 알려졌던 기본소득을 보자. 비록 몇몇 나라에서 소규모의 실험이 있기는 했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그 정책의 효과 여부에 대한 전문적인 논쟁을 떠나서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그렇게 좋은 정책이라면 왜 아무도 하지 않을까.

당 대표 선거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스위스 사례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곳은 스위스 26개 주(canton) 중 한 곳에 불과하다. 연방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사실상 양원제를 편의상 하나로 합쳐놓은 형태에 가깝다. 역시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직접민주주의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왜 어느 나라도 하지 않을까.

이재명의 억강부약은 시민 반목 조장

거꾸로 직접민주주의가 자칫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은 정치사상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정치사상가는 직접민주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다수의 폭정을 우려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이유이다. 기본소득과 직접민주주의 두 가지를 합쳐놓고 보면 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 생긴다. 그는 왜 아무도 하지 않는 정책만 골라서 하자고 할까.

답은 그의 대선 출마선언문에 나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에 있다.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뜻이다. 약한 자를 돕는 부약(扶弱)이 핵심인 것 같지만, 사실 숨어있는 핵심은 강한 자를 누르는 억강(抑强)에 있다. 약한 자를 돕기 위해 강한 자를 눌러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정신도 아니고 복지국가의 정신도 아니다.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사회적 기반은 시민들 간의 반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대에 있다. 내가 더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우리의 공동체, 더 나아가 민주공화국의 동지들을 지키겠다는 연대의식의 기반 위에 민주주의가 서고 복지국가가 선다.

강한 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누르겠다고 하면 연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최악의 갈등이 들어선다.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의 시대에 세계적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 서민의 삶은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계층 간 타협이 절실한데, 악으로 규정되어 억누름을 당하면서 기꺼이 세금을 더 낼 바보는 없다.

민주주의도 복지국가도 아니지만, 억강부약이 가져오는 확실한 효과 한 가지는 있다. 공통의 적인 기득권층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좌파 포퓰리즘의 도구로서의 효과이다. 기본소득이나 직접민주주의 같은 아무도 하지 않는 정책들의 공통점은 억강부약 하기 위한 좌파 포퓰리즘의 도구로서 유용하다는 점이다. 하이라이트는 “상위 10%에 못 들면서 국토보유세 반대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이었다. 이보다 더 증오를 부추기는 발언이 있을 수 있을까.

상위 1%가 소득세 41% 부담

정책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문재인 정부 내내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거론되었던 ‘상위 1%’는 사실은 전체 소득세의 41.3%를 내지만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조세 미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에 가까운 37%이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2년 35%에서 2020년 45%로 8년간 10%포인트 올랐다. OECD 최고 세율일 뿐 아니라 인상 속도에서도 신기록을 세웠다.

부자 증세의 대표 사례처럼 거론되는 미국의 바이든 증세 안에서도 연간 소득 25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330억원 이상 버는 사람들에게 45% 소득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 ‘희망 사항’이다. 한국은 연간 10억원 이상만 벌면 이미 45%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바이든처럼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바이든이 한국처럼 하자고 해야 정상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적으로 지목하는 악마 같은 기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선 때 이재명 후보도 주장했었던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가려면 약 170조원의 복지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억강부약해서 국토보유세 과세 대상으로 지목된 상위 10%가 낸다면 1인당 연간 4000만원 정도씩 추가로 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부세 대상이 된 상위 2%가 낸다면 1인당 연간 2억원씩 더 내야 한다. 30억 자산가가 10년만 세금 내면 복지 수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계층 간 타협 없이 억강부약해서 중부담·중복지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선진국 주요 정당 중 좌파 포퓰리즘 표방 유일

좌파 포퓰리즘의 길로 직진하는 민주당에서 정책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당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 지지자에 이르기까지 가상의 적을 향한 혐오를 쏟아낼 뿐이다. 군사독재보다 심한 검찰공화국이라고 주장해봤자 군사독재를 경험한 세대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친일 국방이라고 비판해봤자 아세안에서 한·미, 한·일, 한·미·일 연속 정상회담이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었다는 현실을 부정할 방법은 없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수준 낮은 흠집 내기는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정책은 없고 증오만 있다. 민주당의 퇴행은 불행한 일이다. 집권 가능성이 있는 주요 정당이 좌파 포퓰리즘을 표방하기로는 선진국 중에 유일하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좌파 포퓰리즘의 유혹을 내려놓고 합리적 정책 경쟁을 통해 정부 여당을 견제해주기를 수많은 민주주의자는 바라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