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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면서 자유로운, 빈에서 보고 느낀 것들 담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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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오스트리아 빈의 향취가 느껴지는 크라이슬러·슈베르트 등 연주한 앨범 ‘내 마음속의 빈’을 낸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스트리아 빈의 향취가 느껴지는 크라이슬러·슈베르트 등 연주한 앨범 ‘내 마음속의 빈’을 낸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빈의 문화는 독특해요. 독일 문화권을 기반으로 보헤미안·슬라브 문화가 가세했죠. 동과 서의 만남이기도 하고 지배층(왈츠)과 피지배층(렌틀러)의 결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페라도 슈타츠오퍼와 폭스오퍼가 따로 있죠. 빈 필도 오스트리아인이 20%가 채 안 돼요. 빈 문화의 정체성은 융합에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46)의 말이다. 빈 국립음대, 그라츠 국립음대를 거쳐 하노버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2012년부터 한양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에게 빈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1994년 빈에 처음 간 그는 학위는 빈 국립음대에서 2년 만에 땄지만, 올해까지 빈에 집이 있었다. 유럽 스케줄을 소화할 때마다 들러 잠깐 머물고 이동하면 마음도 편해지는 든든한 베이스 캠프였다고 했다.

달콤함과 따스함 겸비한 음색

누구보다 빈을 마음에 담고 있는 김응수가 새 앨범 ‘Mein Wiener Herz(내 마음속의 빈)’을 유니버설 뮤직에서 최근 발매했다. 김응수의 이번 음반은 2017년 바흐·이자이·버르토크의 무반주곡들을 담은 ‘동경(Sehnsucht)’(데카), 2021년 2집 ‘Das Leben(삶)’(유니버설)에 이어지는 3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내인 피아니스트 채문영의 반주로 2020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했다. “1집이 저를 소개하는 의미였다면 2집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 인간이 겪는 감정들을 전달하려고 했죠. 이번 3집은 빈에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을 담아냈습니다.”

새 앨범에서는 바이올린의 전설인 크라이슬러의 명곡들이 눈에 띈다. 폴디니·레하르·슈베르트 등 빈의 향취를 간직한 작곡가들 작품의 주목할 만한 해석이 귀를 휘감는다.

“바이올린의 황제였던 크라이슬러는 감성적이고 달콤한 사람이었죠. 그의 작품들은 좋은 꿀 같아요. 꿀은 상하지도 않고 많이 먹으면 질리는 설탕과도 다르죠. 레하르 ‘헝가리 환상곡’은 ‘치고이네르바이젠’과 비슷해요. 악보에는 단순하게 나와 있는 부분을 즉흥으로 연주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론도’는 빈 적인 성격과 에너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기교를 보여줍니다.”

김응수는 요즘 보기 드물게 개성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다. 크라이슬러의 달콤함과 오이스트라흐의 따스함을 겸비한 그의 음색과 독특한 비브라토는 지난 시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들려준 아련함을 떠올리게 한다. 김응수의 마음속에 있는 빈의 어떤 특징이 그의 음악성에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빈을 ‘보수적인 동시에 자유로운 도시’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고전주의 전통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쇤베르크·베베른·베르크 등 20세기 무조음악과 음렬음악의 제2빈악파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자유로움 때문이죠.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나 화가 클림트 등의 독창성도 자유롭지 못했으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김응수는 처음 빈에서 공부할 때부터 놀라웠다고 했다. 일례로 시창청음(악보를 보고 정확한 음과 박자로 음을 소리 내서 부르는 것) 할 때 “442㎐로 A를 불러보라고 하더니 444㎐로 올려봐, 다음엔 439㎐로 해보라고 하더군요. 또 특정 화성을 찍어서 구성하고 있는 배음을 모두 얘기해보라고 했고요. 머릿속에 들어있는 음정에 대한 좌표가 찍혀있어야 가능하죠.”

그때 김응수는 ‘이래서 빈이 음악의 도시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흔적보다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중심이 잡혀 있는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공연

김응수는 올해 봄부터 ‘점과 선’이란 이름의 공연 시리즈를 계속하고 있다. 음악사의 여러 점을 이어서 선을 긋는다는 의미다. 4월에 시즌1 10회 공연, 8월에 시즌2 10회 공연을 치렀다. 통영에서 녹음할 때 악보를 많이 가지고 갔더니, 녹음을 맡은 황병준 사운드미러 대표가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많다면 수많은 레퍼토리를 쪼개서 공연해보자’고 제안해서 시작한 공연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2200번 이상 무대에 올라 연주했어요. 한국에서는 많이 못 했죠. 연주자는 편식하면 안 돼요. 음악은 수학적인 머리와 철학적인 머리, 운동신경이 있는 몸, 음악적 감성 등이 하나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거죠. 예술가는 시대의 영향이나 역사적인 흐름의 영향을 받게 돼 있습니다. 생각들의 점을 이어서 선으로 만들어보는 게 흥미로웠죠.”

‘점과 선’ 시즌3 시작은 내년이다. 3월 21일 바흐의 생일을 기점으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그에 앞서 리사이틀로 무대에 선다.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추천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과 함께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빈의 레퍼토리를 만끽할 수 있다. 이달 25일과 27일 울산 울주문화예술회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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