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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인욱의 문화재전쟁

“삼황오제는 실제 있었다” 중국이 우기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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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화를 역사로 바꾸는 중국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신화는 언제나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영생을 누리거나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영웅(히어로)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늘 꿈과 같았다. 인류 공통의 상상력 보고인 신화가 최근 중국에서는 역사로 바뀌고 있다.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석기시대 문명의 흔적을 고대 전설적 제왕인 삼황오제(三皇五帝)가 활동한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신화는 실재한 것일까. 중국에서 새로 발견되는 고대 문명의 뒤에 숨겨진 현대 중국 사회의 이면을 살펴본다.

중국 최초의 문명 스마오 유적

중국 고고학자들이 산시성(陝西省) 스마오 유적에서 출토 된 인물상을 보고 있다. 중국 일부 학자들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치우가 실존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신화의 역사화가 우려된다.

중국 고고학자들이 산시성(陝西省) 스마오 유적에서 출토 된 인물상을 보고 있다. 중국 일부 학자들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치우가 실존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신화의 역사화가 우려된다.

최근 중국학계에서 지금껏 신화로 여겨온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의 흔적이 나왔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유적이 있다. 바로 만리장성 근처인 중국 산시성(陝西省) 북쪽의 스마오(石峁) 유적이다. 1970년대 처음 발견할 당시에는 돌로 쌓은 성벽이 있어서 막연히 만리장성의 일부로 추정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실제 발굴이 진행되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외성과 내성, 중심 구역으로 구성된 대형 석성(石城)으로 밝혀졌다. 총면적은 800만㎡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 반 크기이다. 석성은 치밀하게 조성됐고, 치(雉·성의 방어를 위해서 만든 시설)도 견고했다. 기술 수준이 고구려의 성에 견줄 정도였다.

스마오 유적 현장. [신화통신]

스마오 유적 현장. [신화통신]

특히 중심지인 황성대(皇城臺) 면적만 8만㎡로, 풍납토성 전체의 3분의 2 크기이다. 그 안에서는 수십 명의 해골을 묻은 순장묘, 입으로 부는 하프(구금), 청동기 공방, 천문대 등이 발굴됐다. 새로운 유물 나올 때마다 고고학자들의 놀라움 또한 커지고 있다.

스마오 유적은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夏)나라보다도 빠른 44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스마오뿐만이 아니다. 중국 북방을 따라 만주에 이르는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쌓은 석성 도시가 잇따라 발견됐다. 해당 지역은 중국 중원 지역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다. 유라시아 초원과 접경 지역으로, 관련 역사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고고학의 또 다른 매력이다.

유라시아 초원이 전한 신문물

스마오 유적 현장에서 발굴한 뼈바늘. [신화통신]

스마오 유적 현장에서 발굴한 뼈바늘. [신화통신]

2011년 스마오 유적 발굴 직후 중국 사회가 들썩였다. 삼황오제, 즉 ‘황제’의 유적이라는 주장이 광명일보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거는 극히 모호했다. 하나라 이전에 발달한 도시문명이라면 황제가 아닌 그 누가 만들었겠느냐는 단순한 주장이다. “중원 지역에서 한참 먼 북방에 왜 황제가 있었는가”라는 반박이 일자 “사마천의 『사기』에 ‘황제와 치우가 전쟁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황제와 치우의 ‘탁록대전’을 의미한다”고 대응하는 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곳곳에서 신석기시대 대형 유적이 발굴되면 삼황오제의 유적이 새로 나왔다는 식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황제와 치우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지역 5~6개가 서로 경쟁(?)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조성된 ‘염황상’. 신화 속 인물인 염제와 황제를 역사적 실존 인물로 둔갑한 경우다. [사진 위키피디아]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조성된 ‘염황상’. 신화 속 인물인 염제와 황제를 역사적 실존 인물로 둔갑한 경우다. [사진 위키피디아]

스마오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 지역에 새로운 문명이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지리적 위치에 열쇠가 있다. 여러 연구 결과 이미 4500년 전에 유라시아 청동기와 선진적인 문화가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국, 그리고 만주로 유입된 흔적이 확인됐다. 스마오에서도 다수의 소뼈가 발굴됐다. 유전자 분석 결과 우리가 먹는 한우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소가 실크로드에서 스마오를 거쳐서 퍼져나간 사실이 밝혀졌다. 스마오의 청동기와 화려한 동물장식 또한 유라시아 초원의 영향을 받아서 흘러들어온 것이다.

마치 모닥불에 장작을 넣듯 새로운 기술과 문물이 유입되었기에 중국 북방 지역에 새로운 문명이 발전될 수 있었다. 실제 고고학은 신화적 영웅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기술 교류와 환경에 대한 적응이 문명의 탄생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 검증보다 관광자원 개발

중국 산시성에 만든 고대 황제릉. 신화를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당국의 또 다른 시도다. [사진 윤태옥]

중국 산시성에 만든 고대 황제릉. 신화를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당국의 또 다른 시도다. [사진 윤태옥]

중국의 역사 만들기는 조작 논란과도 이어진다. 예컨대 2011년 중국의 아담과 하와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여와(女媧)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산시성(山西省) 소재 런쭈산(人祖山)이라는 요나라 거란족의 사당에서 12세기의 유물이 나왔다. 여러 유물 중에 인골뼈가 발견됐는데, 그 연대가 6200년이나 됐다고 한다.

이에 산시성 정부는 여와씨의 유골이 출토됐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방 초원의 유목민인 거란이 어느 틈에 중원 지역 한족 전설시대의 여와씨를 발굴해서 모셨다는 말인가. 심지어 인골의 연대가 6000년이 넘는다고 무조건 여와씨라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학계에선 인정하지 않지만 지역 정부와 사회에서는 여전히 대중에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 각 지역은 ‘역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개 관광자원 개발이라는 명목에서다. 일례로 허난성(河南省) 중심 정저우시(鄭州市)에서는 삼황오제를 대표하는 염제와 황제를 높이 102m로 형상화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지역 정부의 과열 경쟁 속에 만들어진 이야기와 신화가 역사로 둔갑해 한족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은 2002년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전설의 시대를 역사로 바꾸는 ‘중화문명탐원공정’에도 착수했다. 동북공정은 사실상 중국 전체에서 몰아치는 역사 만들기의 일부인 셈이다.

한족 중심의 역사관 개편 시도

중국 투르판에서 발견된 ‘복희여와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투르판에서 발견된 ‘복희여와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신화는 수천 년의 기억이 녹아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하지만 그것을 역사로 만들려는 순간 신화는 조작되며 원래의 가치를 상실한다. 중국은 굳이 신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엄청난 문화유산과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초강대국이 된 지금에도 왜 신화의 역사화에 힘을 쏟고 있을까.

그 배경에는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추종이 약해지면서 그 빈자리를 한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채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다민족 공존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한족 국가’를 공고히 해왔다. 중국에는 다양한 민족이 있었으니 다양한 신화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마오 유적이나 홍산문화 같이 중원 지역과 상관이 없는 곳에도 삼황오제로 대표되는 한족의 신화를 대입하고 있다. 현대 중국 전체를 한족 중심의 역사관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이다.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문명에 대한 경쟁과 내부 결속이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 세계 4대 문명 지역은 대략 5500년 전에 등장했다. 반면 중국 상(商)나라는 3500년 전에, 즉 다른 문명보다 2000년 가까이 지난 뒤에 형성됐다. 여타 문명보다 한참 늦은 중국 문명의 연대를 올리기 위해서 삼황오제를 실제 역사로 만들려는 것이다. 공교롭게 이 모든 시점이 시진핑의 연임과 맞물린다. 역사에 대한 부풀려진 자신감으로 중국 사회의 내부 문제를 덮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역사 갈등 뒤에 숨은 신화 전쟁

신화는 인류 공통의 자산이다. 그리스의 제우스 신화나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신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신화가 주는 문화적 가치,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인류 공통의 의미는 영화나 게임 등에서도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

만약 그리스 신화를 앞세워 ‘제우스의 시대’의 존재를, 나아가 그리스인의 우월함을 주장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신화는 빛을 잃고 역사는 뒤틀렸을 게 분명하다. 물론 신화가 민족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던 때도 있었다. 고려시대 국난의 시절, 20세기 초반 일본과 서구의 침략에 대항할 때에 한국 전통 신화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신화를 역사로 만드는 것은 대부분 위험하다. 북한의 단군릉, 유럽 우익의 백인 우월주의에 동원되는 아리안 신화, 일본 우익 세력이 아마테라스(天照·태양신) 이후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천황의 세계가 그러하다. 신화를 역사로 바꾸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