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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서 서울 가면 돌변…'남자 요리요정' 수상한 이중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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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이정웅 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 '요리요정이팀장 컴퍼니'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그의 '본캐'는 한라식품 총괄이사지만, '부캐'는 '요리요정'이다. 김현동 기자

요리연구가 이정웅 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 '요리요정이팀장 컴퍼니'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그의 '본캐'는 한라식품 총괄이사지만, '부캐'는 '요리요정'이다. 김현동 기자

 요리연구가 이정웅(39)은 이중생활을 한다. 일주일 절반은 회사 본사가 있는 경북 상주에서, 절반은 서울에서 지낸다. 액상 조미료 제조업체 한라식품의 총괄이사인 그는 회사에선 생산관리와 마케팅을 총괄한다. 서울에선 대형마트 바이어들과 상품을 기획하고 계약도 직접 진행한다. 사실 서울에선 ‘요리요정 이팀장’이라는 ‘부캐’이자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시간이 더 많다.

한라식품은 이 씨의 할아버지 고(故) 이용상 창업주가 일본에서 훈연 참치(가다랑어 포)를 만드는 기술을 배워와 1972년 제주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가업 이으려 요리 영상 촬영 

이정웅 씨는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 사무실에서 촬영하기 시작한 요리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요정 이팀장'이라는 '부캐'를 갖게 됐다. 김현동 기자

이정웅 씨는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 사무실에서 촬영하기 시작한 요리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요정 이팀장'이라는 '부캐'를 갖게 됐다. 김현동 기자

‘요리요정’의 시작은 팀장 시절 가업을 잇기 위한 마케팅이었다. 2016년 말 회사 사무실 한쪽에서 촬영해 시작한 요리 영상으로 페이스북 팔로워가 8만명으로 늘었고 4년 전부터는 쿠킹 스튜디오를 차려 월 3~4회 프라이빗 요리 교실을 진행한다. 백화점 등 행사장에서 그를 알아보는 손님도 있고, 업계 경쟁사에서도 ‘요리요정’을 초빙할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 몇 년째 잡지 등에서 요리 콘텐트를 연재 중인 그는 지난해 일산에서 서울 마포구 연남동으로 스튜디오를 확장 이전했다.

그런 그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요리 철칙이 있다. “요리는 15분, 조리 순서는 4번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씨는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쿠킹 스튜디오에서 기자와 만나 “조리 순서가 4번을 넘어가면 집중도가 떨어지고, 따라오지 못한다”면서 “일단 5번째 과정이 들어가는 순간, 집에서는 요리를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재료 손질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했다. “마늘 까서 다지고 요리하면 향도 살고 맛도 좋지만, 언제 보관하고 언제 쓰냐”면서다. “대기업에서 석ㆍ박사들이 머리 맞대고 간편하게 활용하라고 개발한 재료들 잘 써야죠.”

그는 대신 밀키트나 배달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집 반찬은 김치와 멸치볶음, 진미채 정도는 항상 구비해둔다. 새로운 레시피는 제철 식재료를 먼저 검색해서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참고해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기존 레시피에 재료만 바꾼다. 그는 “된장, 간장, 소금 베이스는 같다”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제철재료를 활용하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육절기에 손 다쳐도 “적성 맞아”

이정웅 씨는 "요리가 적성에 맞아서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했다. 한식 전문가인 그는 내년에 '요리요정'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게 목표다. 김현동 기자

이정웅 씨는 "요리가 적성에 맞아서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했다. 한식 전문가인 그는 내년에 '요리요정'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게 목표다. 김현동 기자

그의 요리 사랑은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요리와 먹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할아버지의 요리 ‘실험’을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진로를 정했다. 대학도 식품공학과로 진학했고, 대학에 다닐 때부터 참치를 농축하고 추출하는 현장 생산 업무를 직접 했다. 2009년 육절기에 손을 심하게 다쳐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적성에 맞아서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궁중음식연구원 3년 과정을 수료한 뒤 궁중음식 체험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엔 ‘요리요정’ 이름으로 나만의 책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회사 제품을 활용한 레시피북을 출간했다. “요리는 쉽고 맛있으면 되거든요. 김치를 담글 때도 배를 갈아 넣기보다는 시판용 배 음료수를 넣는다든지, 그런 저만의 포인트를 담고 싶어요.” 요리에 도저히 재능 없는 초보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산다는 동생들에게 반찬을 해준다는 그의 답변은 역시나였다. “저는 웬만하면 간을 안 봐요. 느낌이 오거든요. 요리도 타고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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