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수정의 시선

"통일, 북한 주민의 인권 되찾아주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한국, 4년만에 유엔서 북 인권 제기

외부의 관심과 압력이 인권의 동력

정권·정세와 무관한 가치로 다뤄야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진행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의 상호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유엔 웹 티비 캡쳐]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진행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의 상호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유엔 웹 티비 캡쳐]

 "수용소 얘기를 안 믿는 분들이 많아 놀랐어요. 정치범 수용소, 북한 사회의 공포, 현실입니다. 단, 아이들을 노역에 동원한다는 얘긴 과장됐어요. 남이든 북이든 애들은 귀하게 여기잖아요." 함경북도 청진에서 철학 교수로 일하다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여성에게서 들은 얘기다. 남편은 사회 저항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갔고, 힘깨나 쓰는 친정을 둔 그는 이혼하면서 수용소행을 면했다고 했다.
영생의 권력을 추구하는 독재 정권은 강압 통치와 인권 탄압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정권이 유지된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한국 영상물을 유포하고 시청한 사람에게 각각 사형과 최대 15년형에 처하는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만들고,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오가는 주민에 대한 총살령을 내렸다.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이뤄지는 북한 인권 문제 논의에 적극 관여한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영향'을 이유로 보였던 퇴행의 정상화 조치다. 이신화 북한 인권 국제 협력 대사(5년간 공석이었다)는 지난주 유엔에서 북한군이 서해에서 공무원 이대준씨를 살해한 사건을 개탄하고, 2015~17년처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황준국 유엔 대사도 여성들이 탈북 과정에서 겪는 인신매매와 강제 송환, 고문 등 인권 유린을 강하게 제기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이 준비 중인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린다. 4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인 '가치 외교'의 실행이란 측면이 크다. 하지만 애초 북한 인권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원칙 아래 정권의 성격이나 정세와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제기했어야 할 이슈다. '진보 정권'은 유독 북한 인권에 눈을 감았다. 하긴 주민의 삶 대신 핵미사일 개발에 국가 자산을 쏟고 고모부와 형을 살해한 김정은을 "예의 바른 지도자" "계몽 군주"라 칭송한 이들 아닌가. 황준국 대사는 유엔에서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 탈북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함을 이웃국들에도 상기시키고 싶다"고 했다. 중국을 겨냥한 말일 텐데, 탈북 어민이 '흉악범'임을 내세워 눈을 가려 북송하고 북한군이 살해한 이대준씨에게 '월북' 프레임을 씌우고 피살 사실을 알고도 "계속 수색"을 지시한 게 한국 정부였다는 사실이 민망하다. 한국의 유엔 인권이사국 연임 실패를 두고 논란이 분분했는데, 토마스 킨타나 전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 인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이사회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종합민원실에서 고인 사망관련 국방부 조사 요청서 제출 전 김기윤 변호사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종합민원실에서 고인 사망관련 국방부 조사 요청서 제출 전 김기윤 변호사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군부독재를 겪으며 민주화를 스스로 이뤄낸, 어느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인권 감수성을 지닌 대한민국 국민은 외부의 관심과 압력이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큰 동력임을 경험으로 안다. 전두환 신군부 때의 사례. 5·18 민주항쟁 후 신군부가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미국은 강한 항의 성명을 수차례 발표하고 안보협력 철회까지 경고하며 김대중 석방·구명에 나섰다. "카터 행정부 말기 한·미 관계 최고 사안이었다. 레이건의 안보 보좌관 리처드 앨런은 '김대중을 처형하면 거북한 한·미 관계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김대중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전두환의 백악관 방문을 약속하는 안을 냈다."(돈 오버도퍼,『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1985년 10월 리처드 워커 주한 대사는 김근태에 대한 고문 증거를 입수한 뒤 한국 정부에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이 사건이 한국을 계속 괴롭힐 것"이라며 경제 제재까지 거론했다.
 탈북 외교관 태영호 의원은 2001년 5월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EU 의장으로 방북했을 때 통역이었다. "페르손은 김정일에게 '핵문제가 해결돼도 인권 문제가 남는 한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은 어렵다고 했다. 지원이 어렵다는 뜻. 이후 김정일은 '인권대화로 시간을 끌고 유럽을 속여 넘기라'는 외교 지침을 내렸다. 외국인에게 보여줄 법원·감옥을 만경대구역에 건설했고 전문가들을 유럽 인권 강습에 보냈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변화의 틈이었다. 북한-EU간 인권대화 중단 이후 2003년부터 이어진 게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이다. 태 의원은 통일을 '북한 주민에게 인간의 고유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라 정의한다.

한국, 4년만에 유엔서 북 인권 제기 #외부의 관심과 압력이 인권의 동력 #정권·정세와 무관한 가치로 다뤄야

 2014년 12월 유엔 안보리에서 오준 대사는 북한 인권 문제의 특별한 의미를 명연설로 남겼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나(just anybodies)가 아닙니다. 수백만이 아직도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찍은 영상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쳐집니다. 훗날 오늘을 되돌아볼 때 이들을 위해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