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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도로교통법 제17조 3항에는『모든 차의 운전자는 위험방지를 위한 경우나 그 밖의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운전하는 차를 갑자기 정지시키거나 속도를 갑자기 줄이는 등의 급 제동을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에서 문제가 되는 요소는『위험방지를 위한 경우나 그 밖의 부득이한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모호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차와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즉 교통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행하는 급 제동도 법을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위법 적 행위로 오도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조항의 본래정신은 차 사이의 안전거리(Stopping Sight Distance)를 확보토록 하기 위한 것으로 앞차에 어떤 의무를 지우기보다는 뒤따르는 차량이 안전거리를 유지토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뒤따르는 차량은 앞의 차량이 급 제동하는 경우에 대비해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운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얌체같이 급히 끼어 드는 차량이 적어야 뒤차가 급 제동을 덜하고 또 차간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한편 이 법조문 1항에는『모든 차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앞차의 뒤를 따를 때는 앞차가 갑자기 정지하게 되는 경우 그 앞차와의 충돌을 피할 만한 필요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같은 법조문에 일반적인 원칙론과 예외 론을 동시에 규정함으로써 해석상 매우 모호하게 돼 있어 교통안전에 나쁜 영향을 끼치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즉 두 대의 차량이 추돌 사고를 일으켰을 때 앞차가 위법일수도 있고 뒤차가 위법일수도 있으며 앞 뒤 차 모두 위법일수도 있는 소위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현상이 일어난다.
외국에서 교통안전을 위해 신성불가침의 조항으로 여기고 있는 방어운전(Defensive Driving)원칙에 따르면 뒤차가 앞차를 추돌 했을 때 모든 책임은 어떤 경우에서든 뒤차에게 있다는 원칙에서 조금도 벗어나거나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올바른 교통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도로교통법 제17조3항은 조속히 폐지돼야 하겠다.
장명순<한양대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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