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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 북한 언급은 한 문장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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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우크라 사태로 중·러 동시에 위협

아시아·유럽 정책 비중 균형 잡기

북핵 위협 소홀히 다뤄진 건 문제

지난주 미국 백악관은 ‘국가안보전략(NSS) 2022’를 발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실과 정부 기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포함한 다양한 인사들이 외교·국방 정책 방향을 놓고 수많은 회의와 초안 수정을 거쳐 완성한 보고서로, 바이든 정부 정책의 이정표랄 수 있다. 필자도 공직에 있을 때나 떠난 뒤 여러 번 보고서 작성과 리뷰 등에 참여했다.

지난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AP=연합뉴스]

 새 보고서엔 놀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지난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이미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는 같은 민주당인 오바마 행정부 이후 추진력을 잃은 '중국과의 G2 관계 형성'보다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에 훨씬 큰 방점을 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작성이 쉽진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 행정부 내에선 유럽으로의 재회귀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를 두고 오래 논쟁했고, NSS는 결국 아시아와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결론 냈다. 중국을 미국의 이익과 국제 질서에서 가장 '결정적인' 위협으로, 러시아를 가장 ‘긴급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현재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푸틴 고립과 응징에 적극적이고, 유럽 동맹국들은 대만의 중요성과 인도·태평양의 안보 이슈가 유럽에도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 정책적 균형 잡기는 가능해 보인다. 국방비 지출의 향배가 달린 문제이기도 한데, 향후 발표될 국가방위전략을 보면 나토(NATO) 사령관과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의 막후 줄다리기가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다.
 NSS는 민주주의 대 독재국가 간 경쟁을 강조하면서 '중국-러시아'를 다루는 문제도 더 중시했다. NSS엔 대통령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독재 정부에 맞선 민주주의 투쟁을 중시한다는 점은 확연히 새롭다. 네오파시즘 성향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일으킨 샬러츠빌 폭력 사태를 보며 대선 출마를 결심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의 이름을 내건 의회 폭동을 지켜보며 굳힌 생각이다.
 바이든에게 독재에 대항하는 투쟁은 대외 문제이자 국내 문제다. 일부 외국 정부에겐 메시아적 메시지로 비쳤을 지난해 12월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도 이런 정서에서 출발했다. 외교 정책을 이념적 틀에 가두면 러시아와 중국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더 끈끈하게 만든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다.
 나는 바이든의 이런 접근을 충분히 이해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념으로 뭉쳐 민주 국가들에 각자, 또는 (조율되지 않은 때도 있지만) 함께 개입한다. NSS는 미국이 "국가별 상황에 맞춰 대응할 것“이고 "주권과 영토 존중의 원칙으로 질서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바이든의 접근이 외교 상황과 항상 부합하진 않음을 은연중 인정하는 셈이다.
 인상적인 건 NSS를 관통하는 질서정연하고 전략적인 메시지다. 이전 민주당 정부들이 임기 초 발표한 NSS 보고서가 선거 공약의 반복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임기 초 바이든 대통령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정책은 이제 한국 등 민주주의 경제 대국이 함께 하는 공급망, 혁신, 이동통신 및 기타 기술 경쟁 분야를 강조하는 초당적 접근으로 변모했다. NSS를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클린턴 및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을 뽑아 준 민주당 유권자는 물론 무당층이나 국제주의 시각을 지닌 공화당 유권자도 타깃으로 삼았다. 미국 내 트럼프주의 정치를 고립시키려는 보다 큰 정치적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이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은 북한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문장.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 계속 추구, 북한의 위협에 대한 확장 억제 강화 약속 등인데, 이는 판에 박힌 문구다. 사실상 의미 없는 언급이다.
 물론 이런 약속들이 전체 전략상 중요한 축인 건 사실이지만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엔 실존적으로 큰 위협이 아닌 테러리즘이나 보건 등 문제와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짧게 다뤄지고 말았다. 사실 북한은 우리가 어떠한 접근법을 취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상투화된 문구 이상으로 다뤄졌어야 할 문제다. 내년에 공화당이 새로운 대북 전략을 요구하는 입법에 나설 수도 있겠다.

우크라 사태로 중·러 동시에 위협 #아시아·유럽 정책 비중 균형 잡기 #북핵 위협 소홀히 다뤄진 건 문제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