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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빈의 황금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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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류태형
류태형 기자 중앙일보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 2일 오전 11시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 우리나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섰다. 스웨덴과 헝가리를 잇는 유럽 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다.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오페라 아리아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등으로 빈 청중들과 교감했다. 무대에서 리허설을 한 단원들은 “앞선 두 공연보다 더 설렌다”는 반응이었다.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홀의 훌륭한 음향에 매료됐다고 했다. 호화로운 장식과 빛나는 내부로 ‘황금홀’로 불리는 곳. 그보다 더 빼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음악홀에 청중뿐 아니라 연주자도 감동했다.

공연을 이끈 지휘자 정치용과 무대에 섰던 소프라노 임선혜, 테너 김재형, 국립심포니의 몇몇 단원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이런 홀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단원의 말에 정치용 지휘자는 “이런 홀은 여기밖에 없다.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답했다.

세계 최고의 소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

세계 최고의 소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

빈의 링 슈트라세에 위치한 무지크페라인잘은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다. 음향 좋기로 유명한 슈박스(구두상자) 타입 홀의 대명사로 덴마크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설계를 맡아 1870년 개관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브람스 교향곡 2번과 3번은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초연됐다. 그로서잘보다 작은 700석 규모의 실내악 홀 이름이 브람스잘이다.

무지크페라인잘 같은 홀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음악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품어볼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여러 곳에서 황금홀을 모방한 시도가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꽤 구체화했다. 1990년 회사 창립 60주년을 맞아 개관한 오사카의 스미토모 생명 이즈미홀이 대표적이다. 시작단계부터 무지크페라인잘의 음향을 목표로 천정부터 벽, 바닥, 의자, 샹들리에까지 치밀하게 설계했다. 파이프오르간과 821석 객석을 갖추고 베토벤 당대의 포르테피아노 등 독특한 악기도 구비했다. 음질 좋은 홀로 명성이 자자하며 연간 270~280일의 높은 가동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휘자 정치용의 말대로 빈 무지크페라인잘은 유일무이, 대체불가다.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 음향이 더 좋아지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가치가 높아진다.

이달 초 국립심포니에 이어 서울시향이 25일 빈 황금홀 무대를 밟는다. 19·20·21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극장, 23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27일 런던 카도건홀로 이어지는 유럽 투어의 일환이다.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한다. 차기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을 선임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서울시향이 최근 더 주목받고 있는 K클래식의 저력을 본고장에 알리고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