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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빈 무지크페라인잘 공연 “빈을 매료시킨 한국의 울림”

중앙일보

입력

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투어 공연에서 소프라노 임선혜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투어 공연에서 소프라노 임선혜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연주 공간인 빈 무지크페라인잘에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했다.
올해 초 코리안심포니에서 국립심포니로 명칭 변경 후 떠난 첫 유럽투어의 마지막날이었다. 지난달 28일 스톡홀름 콘서트홀, 30일 부다페스트 에르켈 극장에 이어 빈 신년음악회로 유명하고 아름다운 음향을 자랑하는 장소에 섰다.

제6대 음악감독 정치용이 지휘대에 올라 국립심포니 초대 상주작곡가인 김택수의 ‘더부산조’로 공연을 시작했다. 얇은 회초리를 모아 굵은 봉처럼 만든 서양 타악기 ‘루테’를 보면대에 치자 국악기 박의 울림처럼 생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주가 진행되자 말러 교향곡의 한국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평소를 모방한 관악기가 장단을 리드하자 관현악에서 특유의 흥이 살아났다. 휩쓸릴 듯한 관현악의 한국적 기세가 돋보였다. 정치용의 비팅이 빨라지고 더블베이스의 몸통과 현을 두드리며 열띤 총주에 가속이 붙었다. 해금 같은 하프와 현으로 끝을 맺었다.

이어서 한국의 말맛을 느낄 수 있는 우리 가곡들이 연달아 연주됐다. 먼저 소프라노 임선혜가 등장해 임긍수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면’을 불렀다. 가슴 뭉클한 전주와 포근한 국립심포니의 연주 위에 꾀꼬리 같은 가창으로 낭랑하게 울리는 우리말 가사는 이국땅에서 더욱 감격적으로 들렸다. 임선혜는 “22년째 유럽 무대에 섰지만 빈 무지크페라인잘 대기실에 한글로 ‘임선혜’라고 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이수인 ‘내 마음의 강물’을 부른 테너 김재형의 음성은 쩌렁쩌렁 울렸다. 전날인 1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에서 열린 오페라 ‘토스카’에서 주역 테너 카바라도시를 부르고 빈에 온 그는 여전히 힘찬 고음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발산했다. 빈 국립오페라 전속 성악가로 활약한 베이스 박종민은 이안삼 곡 ‘그리운 내 친구여’를 불렀다. 고급스런 저음으로 천천히 읊는 듯한 노래가 마음을 움직였다.

오페라 아리아가 한국 가곡의 뒤를 이었다. 로시니 ‘방금 들린 그대 음성’에서 임선혜는 가볍게 띄우는 비음과 미끄러지는 고음을 선보였다. 오페라 무대처럼 귀여운 동작과 매너로 사랑스런 로지나를 구현했다. 김재형이 부른 레하르 ‘미소의 나라’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에는 힘찬 노래 속에 절절한 심정이 실려 있었다. 박종민이 부른 모차르트 ‘돈 조반니’ 중 ‘카탈로그의 아리아’는 이날 공연 중 빈에 가장 어울린 순간이었다.
모차르트 해석에 탁월한 정치용의 지휘가 빛났고, 물 만난듯 능청맞게 수첩을 펼치며 노래하는 박종민의 연기에 현지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임선혜와 김재형이 부른 레하르 ‘유쾌한 과부’ 중 이중창 ‘내 입술은 침묵하고’는 곁들인 연기에 청중의 미소가 번졌다. 원곡과 달리 반복하며 좁은 무대에서 출 듯 말 듯 하다가 결국은 왈츠를 추는 연기도 정감 있었다.

 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투어 공연에서 베이스 박종민이 열창하고 있다. 사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2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유럽투어 공연에서 베이스 박종민이 열창하고 있다. 사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1부의 마무리는 빈을 찬양하는 노래인 루돌프 시에친스키의 ‘빈 오로지 당신만’이었다. 박종민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가창을 들려줬다. 크림처럼 달콤하고 커피처럼 쌉싸래한 빈의 풍미가 감돌았다.
휴식시간 뒤 메인 프로그램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다. 1악장은 금관의 포효로 시작했다. 둥글게 울리는 무지크페라인의 음향이 또 다른 악기처럼 감칠맛을 더했다. 점차 고조되며 나오는 총주에서 페스트리 빵처럼 층이 느껴졌다. 클라리넷과 바순 플루트가 맴돌이를 한 이후 현이 섬세하게 진행했다. 총주의 헤비급 금관에는 전과 다르게 날카로움도 보였다. 관과 현이 포개지며 열띤 순간들을 만들었고. 이후 목관의 소용돌이 속에 긴장의 끈이 이어졌다. 트럼펫의 바통을 트롬본이 이어받고 피날레에서 금관이 운명의 외침 같이 목 놓아 울었다.

2악장은 현의 피치카토와 비련의 주인공 같은 오보에, 따스한 첼로 음이 돋보였다. 현과 관에 발그레한 혈색이 돌았다. 휘몰아치고 잦아드는 가운데 안정감이 느껴졌고 호른의 먹먹함 뒤 비극적이었던 오보에도 따스해졌다.
3악장은 현의 피치카토가 이어진 뒤 오보에와 플루트가 여유를 갖고 해석했다. 피콜로와 플루트가 지저귀고 피치카토가 속도를 더했다. 4악장 첫머리 금관의 포효에 깜짝 놀라는 관객들도 몇 있었다. 일사불란한 연주였다. 금관의 묵직한 주제 연주 뒤 심벌즈가 쾌적했고, 현의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다시 긴장을 불러일으킨 뒤 묵직한 금관의 양감이 홀을 타고 돌았다. 템포가 빨라지며 맞이한 피날레는 강렬했다. 정치용의 지휘는 과장이나 거친 부분이 없었지만 그 저류에서 극적인 흐름이 느껴졌다.

앙코르는 슈트라우스 2세 ‘관광열차 폴카’였다. 한국의 국립심포니가 연주하는 빈 왈츠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으로 다가갔다. 공연을 지켜본 오스트리아 연방의회 국회의원이자 한・오 의원 친선협회장인 마리아 그로스바우어는 부친이 빈 필 트롬본 단원이었고 본인도 피아노와 플루트를 연주하고 색소폰을 공부했다고 했다.
“한국과 빈의 음악으로 꾸민 프로그램이 너무나 멋졌다”는 그로스바우어는 “한국 가곡의 선율이 아름다웠다. 가사는 몰랐지만 제목으로 분위기를 상상하며 눈물이 났다. 이게 음악의 힘”이라고 말하면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에서 국립심포니 현악의 비브라토, 관악기의 연주가 평소 유럽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자유로운 해석에서 음악의 아름다움이 우러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빈=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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