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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이 사람의 삶- 조창호 호아드갤러리 대표

중앙일보

입력

“수집한 스니커즈마다 스토리텔링...예술품 될 자격 충분하죠.”

삼청동에서 스니커즈 상설 전시, 하루 1000여 명 다녀가 ‘대박’
기업체에서 협업 제안받아… 취미로 시작해 ‘비즈니스’ 성공

조창호 호아드 대표는 “삼청동 갤러리에서 신발을 전시한 건 국내에서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조창호 호아드 대표는 “삼청동 갤러리에서 신발을 전시한 건 국내에서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지난 1월 셋째 주 주말, 역사와 문화의 거리, 서울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섰다. 홍대·강남에서나 볼 법한 통이 큰 힙합 청바지에 레게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화제를 모은 전시는 ‘아트 스니커즈+넥 브레이커즈(Neck Breakers)’전(展).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레어템’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스니커즈 문화를 알리고자 자발적으로 나선 기획전이었다.

1층 스니커즈홀에는 고가의 조던 컬렉션과 에어 조던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친필 사인이 담긴 슈즈를 작품화해 전시했다. 유명 사진가 김우일(75) 작가가 스니커즈 소장품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사진 작품이었다. 2층 갤러리에서는 스니커즈의 변천사를 연대별로 시각화한 전시가, 갤러리와 함께 운영되는 카페에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프라그먼트 트레비스스캇 조던로우’ 응모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처럼 ‘스니커 헤드’(열성적인 운동화 수집가이자 마니아)라면 누구라도 가슴 벅찰 전시 구성이었으니 젊은 관람객이 줄을 섰던 것이다. 전시를 개최한 주인공은 호아드(HOARD) 갤러리의 조창호(45) 대표. 그 또한 못 말리는 스니커 헤드였기에 가능했다. 7월 29일 호아드 갤러리를 방문해 조창호 대표를 만났다.

갤러리 1층에 스니커즈홀 만들어 상설 전시

1985년 나이키 초기 시카고 모델은 부산에서 제작했다. 에어조던의 밑창을 뜯어내니 보이는 ‘최고의 품질을!’ 문구. /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1985년 나이키 초기 시카고 모델은 부산에서 제작했다. 에어조던의 밑창을 뜯어내니 보이는 ‘최고의 품질을!’ 문구. /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스니커즈를 주제로 삼청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다니 대단하다.

“주말 하루에만 1000여 명이 방문할 정도로 핫했다. 스니커즈 역사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큐레이팅을 곁들인 게 주효했다. 그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갤러리 1층을 스니커즈홀로 만들어 상설 전시하고 있다. 지금도 소문을 듣고 주말에 지방에서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짝 지어 갤러리를 찾아오곤 한다. 요즘 젊은 층들은 스니커즈에 관심이 많다.”

보통 유행에 민감하고 ‘힙’한 현대미술 갤러리는 강남이나 양재 쪽이 많고 삼청동·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서는 순수예술(파인아트) 위주로 전시하는데?

“뭐랄까, 여기 삼청동의 ‘고고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다. 삼청동 갤러리에서 신발을 전시한 건 국내에서 제가 유일무이할 것이다.(웃음)”

조 대표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가업인 아동출판업을 이어받으리라 생각하고 진로를 정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돈은 벌었지만, 부모님 밑에서 일하다 보니 온전히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처음부터 쌓아 올릴 수 있는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찾아 39살에 카페&갤러리 콘셉트의 ‘호아드 갤러리’를 열었다.

흔히 생각하는 갤러리와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요즘 삼청동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는 갤러리들이 너무 예술성에만 매달리는 나머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저는 태어난 곳이 여기 삼청동이다. 제 주변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다. 갤러리라는 공간이 제겐 특별하지 않은 곳이라는 얘기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갤러리는 ‘격식 차리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저는 그걸 바꿔보고 싶었다. 예컨대 정통 갤러리에서는 의자를 놓지 않는데 호아드에는 좌석도 있고 커피 같은 음료도 취식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격의 없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제 목표다.”

호아드 갤러리, 주인을 닮은 듯 독특하고 개성적인 느낌이다.

“호아드는 영어로 ‘비축하다’라는 뜻이다. ‘조창호의 아트 드림’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기증품을 비축하다’라는 의미로 많은 예술인이 오가며 예술적 소재가 쌓인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어감도 좋고 이런저런 의미가 잘 맞아 갤러리 이름으로 정했다.”

갤러리 1층에 ‘스니커즈홀’을 만든 계기는?

“삼청동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의 80~90%는 여성이다. 남자들은 반강제적으로 이끌려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호아드의 경우 2층 갤러리에는 파인아트가 전시돼 있지만, 보통의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소재는 아니다.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면 차·시계·신발 등이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1층 스니커즈홀에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여자들은 2층에서 전시 관람하며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거다. 지금은 홀에 예술품밖에 없지만, 나중에는 PS(플레이스테이션)이나 오락거리도 들여놓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

소장한 스니커즈 컬렉션 가치만 4억 원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 명품관에 전시됐던 김우일 작가의 스니커즈 작품은 조창호 호아드 대표의 소장품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다. / 사진:조창호 대표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 명품관에 전시됐던 김우일 작가의 스니커즈 작품은 조창호 호아드 대표의 소장품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다. / 사진:조창호 대표

조 대표가 보기에 스니커즈의 매력은?

“진짜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코디를 할 때 신발부터 시작한다. 손목에 롤렉스를 차는 게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신발에 천만원을 태울 수가 있어’라고 한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나. 무엇보다 예술품은 관상용으로 걸어두기만 하지 않나. 스니커즈는 신는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실제 이 밑창들을 보면 전부 직접 신은 흔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이다.”

조 대표도 스니커 헤드라고 들었다.

“유니크한 스니커즈 컬렉션을 다수 구비하고 있다. 값을 매기는 게 그렇지만 소장품 가치는 4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예술은 스토리텔링이다. 단순한 변기도 작가(마르셀 뒤샹)의 의도와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샘]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듯이 모든 예술에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조 대표는 수집한 스니커즈에 담긴 히스토리에 착안했다. 그에 따르면 “스니커즈도 하나의 아트피스(예술품)”다. 조 대표는 “스니커즈를 단순히 좋은 신발, 비싼 신발이라고 여기는 것과 예술품으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나이키 조던 시리즈는 34탄까지 나왔다’처럼 신발의 역사를 알고 작품으로서 보면 훨씬 흥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아끼는 소장품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기자에게 스니커즈 3켤레를 선보이며 소장품에 담긴 히스토리를 들려줬다.(상자기사)

스니커즈 작품이 백화점 명품관에 전시돼

‘스니커즈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김우일 사진작가의 제안으로 알고 있다. 실제 스니커즈를 활용한 작품이 상품화되기도 했나?

“그렇다. 신세계백화점에서 김우일 작가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해 명품관에 전시를 진행했다. 쇼윈도에 명품만 나열된 것보다는 중간에 아트적인 요소가 가미된 느낌의 섹션을 만들고 싶다는 기획 의도를 전해왔다. 당시 김우일 작가도 기존의 사진 작업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제 스니커즈를 접하고 작품 모티브로 삼았다. 그때 전시된 작품의 가격이 900만원이라고 했다. 신세계백화점에 걸렸던 사진작품과 동일한 버전을 구입하고자 한다면 호아드 갤러리에서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웃음)”

백화점 명품관에 스니커즈 작품이 전시돼 있다니 신선한 느낌이다. 이 또한 호아드가 추구했던 지향점이 아닌가?

“동의한다. 그래서 정말 기뻤다. 제 신발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 명품관에 걸리다니, ‘신발도 예술품’이라는 제 생각이 실현된 것 같아 꿈만 같았다.”

조 대표는 최근 스니커즈와 관련해 여러 업체에서 컬래버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삼청동에서는 ‘거기 대표가 스니커즈에 미쳤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다. 저도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한다. 뭔가에 미치면 단순히 취미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저는 신발에 진심이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색 전시를 하면서 입소문을 타니 여러 기업체에서 ‘한번 컬래버 할 생각 없냐’고 제의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스니커즈 사랑은 스니커즈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상자기사] 조창호 대표의 애장품 TOP3에 담긴 히스토리

1. 나이키 X 오프화이트 에어포스 1 로우 컴플렉스콘(구매가 2000만원)

“이제 고인이 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이 모델을 구매하기까지 2주 정도 고민했다. ‘나도 유명 디자이너의 사인슈즈 한번 가져보자’며 샀는데 한 9시간 뒤 휴대전화에 불이 나더라. 전화·카카오톡·DM(인스타그램 메시지)이 쏟아졌다. ‘네가 그 신발을 샀다고 들었다,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말인즉슨 내가 신발을 산 직후 버질 아블로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때 판매자가 5배 값을 줄 테니 되팔 생각 있느냐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제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큰 제품이 됐다. 아마 시장에 나온다면 수천만원을 호가할 것이다.”

2. 버질 아블로 콜라보 오프화이트 시카고(구매가 900만~1000만원)

사진:나이키

사진:나이키

“초기 시카고 모델은 1985년 마이클 조던이 선보여 유명해졌다. 조던1은 원래 생산 공장이 부산에 있었다. 1985년에 생산된 조던1 신발 밑창을 뜯어보면 ‘최고의 품질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지 않나? 이 자체가 ‘역사’이자 프라이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조던1에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제작자의 포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게 진정 ‘OG(Original)’가 아닐까 싶다.”

3. 나이키 덩크 SB 로우 왓 더 덩크(구매가 2300만~2500만원)

사진:나이키

사진:나이키

“이 모델은 SB덩크라고 부르는데 일명 스케이트보드화다. 2007년에 가장 많이 팔린 신발 50종의 디자인을 섞어 만든 신발이다. 기계로 일률적으로 찍어낼 수 없어 사람이 직접 수공업으로 작업한 것이 특징이다. 사이즈가 295㎜이고 한정판이다 보니 국내에서 구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 글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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