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 택시 타실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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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름을 버젓이 달고 구급차로 꽃배달은 한다.

15일 오후 6시 서울 2호선 강남역 주변. 이모(40.직장인)씨가 다급한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급환자 이송단이죠? 급해서 그러는데 일산까지 좀 타고 갈 수 있을까요?."

이씨는 "7만원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며 "가끔 급할 때 택시 대용으로 구급차(앰뷸런스)를 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분 뒤 이씨 앞에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차는 이씨를 태우고 사라졌다. 지난 주말 서울 남산의 한 호텔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호텔 정문으로 들어온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태우러 온 것이 아니라 '화환'을 배달나온 꽃배달차였다. 구급차의 옆부분엔 병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선명했다.

구급차안에 꽃을 싣고 배달 중이다

구급차가 응급환자 수송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아닌 택시나 꽃배달 차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해 8월 한달 간 환자이송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한 구급차를 단속한 결과 적발사례가 1635건에 달했다(경찰청은 매년 한 차례 구급차에 대한 단속을 실시한다).

국정감사장에서도 구급차의 허술한 관리와 오용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문희 의원은 지난달 22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에서 "국립의료원이 구급차로 책과 재봉틀 등을 배달하는 등 상습적으로 편법 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국립의료원 '구급차 운행일지'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책이나 재봉틀 배달, 정원수 구입, 자료 제출, 상급기관 체육대회, 의료지원 등 부적절한 용도로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국립의료원이 3대밖에 없는 구급차를 업무용 차량으로 이용한 것은 의료기관 자격을 상실한 상식 밖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구급차가 택시나 꽃배달 등의 불법 용도로 사용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구급차 매매과정에 대한 허술한 관리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구급차는 의료 기관과 비영리 기관에서 환자 이송 목적으로만 구급차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누구나 구급차를 사고 팔 수 있다. 한 자동차거래업자는 "의료용 사업자 사본만 구해오면 구급차를 아무나 살 수 있다"며 "구급차를 산 뒤 용도는 구매자 마음대로"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인천 대리점의 이광희씨는 "구입자가 가져온 의료기관 사업자 등록증 사본만 차량등록사업소에 제출하면 되므로, 구급차를 산 사람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고 구급차를 운전하는 이모씨도 병원을 운영하는 친척의 사업자등록증 사본으로 구급차를 산 뒤 택배에 이용하고 있다. 이씨는 "급한 배달이 있을 때 경광등을 켜고 달리면 훨씬 빨리 갈 수 있다"며 "출퇴근 시간에는 급한 손님을 태워주고 택시비의 두 배 정도 요금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급차에 관한 사후 관리도 문제다. 구급차에 대해 실질적인 관리 책임을 떠맡은 지방자치단체는 관할구역에 등록된 구급차를 1년에 한 차례씩 운용상황과 실태를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점검 대상이 민간이송업체가 운용하는 구급차에 한정되다 보니 병.의원 명의를 이용해 불법으로 구입한 구급차는 처음부터 아예 관리 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물론 구급차를 응급환자 이송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으로, 응급의료법은 구급차같은 긴급차량을 목적과 달리 사용할 경우 1차 적발되면 15일 업무정지, 2차 적발시 1개월, 3차 적발시에는 2개월 업무정지 명령에 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도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경음기를 켜고 달릴 경우 5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구급차 오용이 워낙 음성적으로 이루어져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이용 기준 및 절차 마련)와 지자체(등록된 구급차 관리), 경찰청(불법 운행 차량 단속), 소방방재청(119차량 관리) 등으로 관리가 나뉘어 있어 불법 운행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관악경찰서 정효연 경비교통과장은 "구급차 오용이 늘면 일반차량들이 정말 환자 이송 차량인지 불신하게 돼 실제 긴급환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여영.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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