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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경기필과 함께 하며 예술적, 인간적 끈끈함 느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예술감독)가 1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모 자네티는 23일, 25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경기필하모닉 ‘베르디 레퀴엠' 지휘를 끝으로 4년간의 임기를 마무리 한다. [뉴시스]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예술감독)가 1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모 자네티는 23일, 25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경기필하모닉 ‘베르디 레퀴엠' 지휘를 끝으로 4년간의 임기를 마무리 한다. [뉴시스]

“떠나게 돼 매우 슬픕니다. 4년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과 함께 예술적으로, 인간적으로도 끈끈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궁합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연주를 할 때마다 즐거움을 준 단원들. 뜨겁게 반응해준 관객 여러분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경기필 떠나는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 위상 끌어올린 '오케스트라 빌더' #날렵 신선한 지휘로 관현악 업그레이드 #

18일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난 경기필 음악감독 마시모 자네티(60)의 말과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2018년 취임했던 이탈리아 지휘자 자네티는 23일(경기아트센터)과 25일(롯데콘서트홀) 베르디 ‘레퀴엠’을 끝으로 2년 임기에 재계약 한 번, 총 4년의 경기필 시대를 마무리한다.
마시모 자네티는 경기필의 ‘오케스트라 빌더’였다. 예술적 역량은 청중을 실망시킨 적이 거의 없었다. 곡의 핵심을 전달하는 암보 지휘로 경기필의 위상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에 버금갈 정도로 끌어올렸다. 그는 기존에 웅장하지만 둔중하게 연주되던 관현악의 전통에서 탈피해 날렵하고 세부를 강조하는 신선한 지휘로 청중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만의 연주법과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경기필 단원들과 사용하는 음악의 언어와 어휘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시대,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시도했습니다. 투명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다듬었습니다.”
자네티는 베토벤 교향곡들과 협주곡에서 새로운 베렌라이터 악보를 채택해 보다 직접적인 접근으로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유동성과 투명한 음색, ‘경기필만의 음악사전’을 만들어 상호작용했던 걸 재임기간의 성과 중 하나로 들었다.
자네티는 경기필과 더불어 NHK 심포니와 차이나 필하모닉 등 아시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이 있다. “전달하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빠르게 발전하는” 아시아 오케스트라들에 필요한 것은 ‘연주의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자네티가 경기필에 오게 된 계기는 톱 클래스 지휘자들과의 연주 때문이었다. 리카르도 무티가 두 번 지휘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공연을 보고 ‘테크닉이 좋고 잠재성 또한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자네티는 4년 동안의 협력 작업을 ‘마술’에 비유했다.
슈만, 브람스, 베토벤, 라벨, 특히 드뷔시 ‘바다’ 같이 처음 연주하는 곡들로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자네티는 “1년 반 가까이 충분히 지지를 얻지 못했고, 정보 공유나 커뮤니케이션이 여의치 않았다. 아이디어를 지지받지 못해 외로움을 느꼈다”며 “모두가 겪은 팬데믹이었기에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합창이 있는 교향곡 3번을 비롯한 말러 교향곡 연주를 더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감추지는 못했다.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베르디 ‘레퀴엠’은 마지막 무대용으로 의도적으로 고른 작품이 아니다. 2020년 예정이었다가 2021년으로 연기됐고 합창이 여의치 않아 다시 올해로 연기됐던 공연이다.
자네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고 기후변화와 경기 침체로 전세계가 좋지 않은 이 시기는 인간성이 위험에 처할 위기로, 여기에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모차르트, 브람스의 레퀴엠이 숙명과 운명으로 죽음의 의미를 받아들인 사후 세계를 다뤘다면, 베르디는 죽기 전의 살아있는 세계를 그리며 ‘왜 우리는 죽어야 하는가? 모든 것이 사멸해야 하는가?’라는 베토벤 적인 궁극적인 질문, 인간적인 시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년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 기악 연주가들의 탁월함에 주목하고 정지원, 선율, 윤아인, 박재홍, 임주희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한 것도 자네티의 아이디어였다. 그 몇 개월 뒤 박재홍은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자네티는 오페라 지휘의 명수로 손꼽힌다. 올해 3월 경기필을 지휘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은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 다른 오페라 무대에서도 러브콜을 받았지만 경기필과의 연주가 아니면 거절했다”고 밝힌 자네티는 앞으로도 의뢰가 오면 언제든 경기필을 지휘하겠다고 했다.
자네티의 후임은 미정이다. 새 음악감독은 올 가을 경기아트센터 사장 부임을 전후로 결정될 예정이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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