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알고보니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2022.07.10 05:00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물욕의 화신,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코로나에서 일상을 찾은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가 아예 놀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늘 어려움 속에도 답을 찾잖아요? 언제나 그랬듯이요! 코로나시대 주목받던 놀이 중 하나가 바로 ‘캠핑’이었죠. 몇십 년을 집돌이로 산 저도 캠핑 용품을 살 정도였으니 정말 유행이 되었나 봐요. 무엇인가 시작하면 소위 ‘장비 빨’부터 세우는 저이기에 가장 잘나가는 캠핑 용품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아보다가 발견한 브랜드가 있어요. 캠핑 고수 지인의 소개에 따르면 ‘캠핑 용품계의 에르메스’ 헬리녹스(Helinox)입니다.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캠핑의자 ‘체어원’

헬리녹스의 스테디셀러 체어원 [사진 helinoxstore]

헬리녹스의 스테디셀러 체어원 [사진 helinoxstore]

‘캠핑을 시작할래!’라고 결심해도 막상 뭐부터 사야 할지 막막합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도 여름에 하는 시즌성 특별판매가 아니면 캠핑 용품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요즘같이 쇼핑 정보가 우리 주변에 켜켜이 쌓인 시절도 없었으니까요. 유튜브나 네이버만 검색해도 캠핑 초보부터 고수까지 갖춰야 할 필수품들을 정리해둔 콘텐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홈쇼핑이나 캠핑 편집숍에 달려가 전시된 세트를 통째로 구매하면 된다고요? 유통업체와 사회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고마운 일이지만 합리적 소비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캠핑은 각자 즐기는 형태가 달라서 무턱대고 산 캠핑 용품은 대부분 먼지만 쌓이게 된다고 하는군요. (차라리 당근으로 보내주세요…)

수많은 캠핑 용품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바로 캠핑의자입니다. 간단한 피크닉부터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는 일정까지, 의자는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예전의 캠핑의자는 아무리 접어도 너무 부피가 크거나 무거웠어요. 가볍게 만들면 부서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2012년 나온 헬리녹스의 캠핑의자 체어원은 접으면 성인 남자 신발 정도의 크기에 1kg도 안 되는 무게로 145kg을 지탱할 수 있었어요. 체어원은 캠퍼들이 그간의 캠핑의자에 가지고 있던 불만을 완벽하게 해결하며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했고, 미국 시장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습니다.(중앙일보, 2016.05) 세계 소비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먼저 이슈가 되었으니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문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어떻게 신생 브랜드가 그간 어떤 캠핑 용품 브랜드도 만들어 내지 못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헬리녹스의 재미난 스토리가 있습니다.

(히든)챔피언! 알루미늄에 미치는 니가~!

헬리녹스는 DAC(동아 알루미늄)라는 국내 중소기업이 만든 브랜드예요. 그렇다면 DAC는 어떤 기업이냐? 전 세계 텐트 폴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을 개발하는 회사에요. 이렇게 대중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해요.

DAC가 생산하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텐트폴 [사진 helinoxstore]

DAC가 생산하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텐트폴 [사진 helinoxstore]

히든 챔피언으로 순조로운 성장을 하던 DAC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은 라제건 대표의 경험 때문이라고 해요.(한경BUSINESS, 2019.05) 라 대표는 텐트 설계도 직접 했어요. 미국 과학잡지에 라 대표가 개발한 텐트가 소개되었는데, 정작 라 대표나 DAC에 대한 소개는 빠지고 텐트 브랜드 직원들의 인터뷰만 실렸다고 합니다. 당시 분위기상 부품 업체는 뒤에 숨어 있는 게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개발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인터뷰에는 핵심 기술마저 틀리게 나왔던 거죠.

DAC는 더는 뒤에 숨지 않기로 했어요. 2011년 브랜드를 설립하며 전면에 나서요. 그리스의 태양신 헬리오스와 밤의 여신 녹스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딴 헬리녹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했습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해요. 무게를 300g에서 200g으로 줄인 등산 스틱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합니다. 2012년 ‘체어원’ 개발, DAC 라제건 대표의 아들 라영환 현 헬리녹스 대표의 합류 이후 반전이 시작됐어요.

슈프림! 나이키! 포르쉐! 협업을 원하는 브랜드들이여, 줄을 서시오~!  

언제부턴가 잘 나가는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자체가 해당 브랜드 가치의 척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생 브랜드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요. 반면 명품 브랜드는 아무나랑 콜라보레이션을 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10년 남짓 된 이 헬리녹스가 그간 해온 콜라보레이션 히스토리를 보면 힙한 브랜드가 넘쳐나요. 2016년, 누구나 아는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됩니다. 슈프림과 콜라보레이션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그 이상의 의미예요. 캠핑 용품에서는 헬리녹스가 업계 탑티어(Top Tier)임을 슈프림이 인정한다는 것으로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헬리녹스와 슈프림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 [사진 헬리녹스 공식 인스타그램]

헬리녹스와 슈프림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 [사진 헬리녹스 공식 인스타그램]

슈프림 이후 각 업계 최고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나이키ACG 같은 아웃도어 패션, 럭셔리 스포츠카 포르쉐, 디즈니 등이 있어요. 그리고 2021년 BTS와 콜라보레이션한 제품이 발매됩니다.

헬리녹스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3P Tent [사진 helinoxstore]

헬리녹스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3P Tent [사진 helinoxstore]

전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BTS 덕분에 아웃도어에 한정되어 있던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를 널리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캠핑에 관심 없던 BTS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헬리녹스에 대해 문의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남편들은 BTS덕에 고가의 캠핑 장비를 구매할 수 있어 신났다는 밈(meme)이 돌기도 했어요.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마케팅

마케터로서 질투를 느낄 정도로 잘 한 사례도 있어요. 2019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의 프로젝트입니다.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행사로 야외 영화 상영 이벤트가 있었는데요. 여기에 헬리녹스 의자 1000개를 깔았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깔린 헬리녹스의 캠핑 의자도 장관이었지만, 그걸 또 헬리녹스가 잘 살렸어요. 이벤트에 쓰인 캠핑 의자를 모두 수거해서 세척하고 번호를 매겨 리미티드 에디션 빈티지 제품으로 판매했습니다. 물론 모두 매진 되었고요.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 이벤트 'Cinema Paradiso Louvre' [사진 helinoxstore]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 이벤트 'Cinema Paradiso Louvre' [사진 helinoxstore]

루브르와의 협업은 결국 캠핑의자, 제품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진행되기 힘든 이벤트였습니다. 그만큼 헬리녹스는 캠핑 용품이라는 업의 본질, 즉 제품의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브랜드 모토를 ‘Sitting is Believing’, 앉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의지는 캠핑 용품 업계에서 드물게 HCC(Helinox Creative Center)라는 오프라인 체험 공간을 운영하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한남동에 있는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에서 다양한 캠핑 용품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 helinoxstore]

한남동에 있는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에서 다양한 캠핑 용품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 helinoxstore]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캠핑 용품을 사려면 전문 편집숍이나 인터넷을 이용해야 합니다. 캠핑 용품 브랜드에서 자사의 제품들을 한데 모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반면 헬리녹스는 서울 중심부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자사의 전 제품을 한 곳에서 체험하고 각종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캠핑 고수 지인 손에 이끌려 몇 번 갔었는데요. 이것저것 앉아보기도 하고 캠핑 장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캠핑이 취미인 분들께는 이미 상당히 유명한 핫 플레이스라고 하는군요.

브랜드를 왜 만들어야 하냐고 묻거든 고개를 들어 헬리녹스를 보게 하라

헬리녹스는 지난 2년간 매년 3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루어냈어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캠핑 시장이 급성장한 덕이 클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에는 지난 2년과 같은 가파른 성장세는 아니더라도, ‘캠핑’이 하나의 주목받는 취미가 되어 캠핑 용품 시장을 점차 키울 것으로 예상돼요. 캠핑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가진 헬리녹스의 소비자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리라는 예측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헬리녹스는 지금도 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콜라보레이션으로는 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드들과 모두 한 것 같은데도 말이에요. 감히 예상하건대 이런 콜라보의 목적은 아마도 아직 캠핑을 모르는 상대 브랜드의 팬덤을 흡수하기 위한 게 아닐까요? 캠핑에 대해 전혀 모르던 BTS팬들이 헬리녹스를 공부하게 만든 것처럼, 새로운 캠핑 인구를 발굴하는 겁니다.

헬리녹스 아웃도어 필드오피스, 캠핑은 심지어 야외에서 업무 볼 아이템이 있는 심오한 세계 [사진 helinoxstore]

헬리녹스 아웃도어 필드오피스, 캠핑은 심지어 야외에서 업무 볼 아이템이 있는 심오한 세계 [사진 helinoxstore]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주력으로 하던 히든 챔피언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협업하고 싶어 줄을 서고 있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헬리녹스는 교과서 성공사례에 나올만한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헬리녹스의 2021년 매출은 539억으로 모기업인 DAC(동아알루미늄)의 매출 384억을 넘어섰어요. 브랜드 설립을 고민하고 계신 경영자분들이 계신다면 고개를 들어 한남동의 헬리녹스를 바라보라고 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헬리녹스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면 어쩌면 마케팅원론에 성공사례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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