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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누리호 성공, 그 인내와 축적의 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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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대한민국 기술로 제작한 누리호가 지난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지축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섭씨 3300도의 초고온 화염과 굉음을 뒤로하고 질주하듯 고도 700㎞를 향해 솟구친 누리호는 마침내 목표 궤도 안착에 성공했다.

우주센터 현장에서 터져 나온 연구자들의 뜨거운 눈물과 함성은 지난 13년간 이어온 집념의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 성공했음을 확인해줬다. 발사 42분 후 발사체에 실려 있던 성능검증위성과의 교신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스스로 만든 발사체로 쏘아 올린 우리의 자랑스러운 위성이 끝내 우주에 안착한 것이다. 5200만 국민이 염원했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우주의 하늘이 활짝 열렸다.

실패와 도전 끝에 우주강국 진입
민간 우주산업 도약 위한 주춧돌

한국은 비교적 늦게 우주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에 시작된 과학로켓 개발을 통해 발사체 기반 기술을 확보했고, 2013년 최초의 저궤도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다. 누리호 개발은 2010년에 시작됐는데,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가 실패한 바로 다음 해였다. 만약 나로호가 실패했다고 좌절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누리호 발사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우주 발사체는 개발을 마친 뒤에도 쏘아 올리기 전까지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 극한의 우주 공간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목표를 정했다면 멈추지 않는 투자와 기다림, 신뢰와 격려로 연구자들을 따라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우주 선진국들이 다른 나라에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 전략기술, 매 순간이 도전이었던 지난한 시간, 연구자들은 피땀 어린 열정과 눈물로 오늘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우주 영웅들, 연구자 한분 한분께 고개 숙여 뜨거운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번 성공으로 우리는 우주 주권 확보에 한 걸음 다가섰다. 지금까지는 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빌려야 했지만, 이제 자력으로 1톤이 넘는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수준의 발사체 기술을 갖춘 나라는 세계 여섯 나라뿐이었고, 대한민국이 세계 일곱 번째가 됐다.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발사체 기술 확보는 우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능력을 확보했다는 의미이고, 우리의 무대가 우주로 확장됐음을 뜻한다. 누리호 개발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과 300여 개 국내 기업이 참여했는데, 지금껏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는 한국이 우주 강국으로 뻗어 나가는 자산이 될 것이다.

누리호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자. 더 멋진 내일을 기대해도 좋다. 한국은 우주를 향한 성취를 일궈낼 준비가 돼 있다. 누리호 제작 기술은 연구원의 품을 떠나 기업에 이전돼 4회 반복 발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신뢰성을 높이고 실용적인 우주 발사체로 성숙하는 과정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전수한 발사체 기술에다 혁신을 가미한 스페이스X가 시장을 선도한 것처럼 우리 민간기업도 누리호 기술을 활용해 우주 발사 서비스 전문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 누리호 후속으로 2031년 달 착륙선을 발사할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준비 중이다. 오는 8월에는 우리가 개발한 달 궤도선 ‘다누리’가 미국에서 발사된다.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발맞춰 우주산업 발전을 앞당길 ‘우주산업 클러스터’ 지정도 준비 중이다.

하반기에 정부는 향후 5년간 우주개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노력과 축적의 시간이다. 정부는 명확한 계획과 투자로 우주를 향한 꿈과 도전을 뒷받침할 것이다. 우리 하늘을 가르며 솟구친 누리호는 이제 ‘글로벌 우주 강국 코리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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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