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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운동권 출신의 사시합격(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생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법시험 응시자의 최종합격은 우리 사회도 이젠 학생운동경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알레르기반응에서 벗어나 그 포용력을 점차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 가닥 기대를 걸게 한다.
이번 합력을 곧이곧대로 우리 사회의 변화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적어도 아직은 성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 합격은 어디까지나 시험에 합격했고 판ㆍ검사에 임용될 수 있는 1차적인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일 뿐 판ㆍ검사의 임용까지 보장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를 확인하려면 임용 때까지 기다려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필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도 면접시험에서 전력이 문제가 되어 불합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항간의 말들을 생각할 때 면접시험까지 거친 이번 최종합격이 사회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합격자인 이흥구씨는 『자신이 합력보다 더 기쁜 것은 우리 사회도 이제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받아들일 수 있고 국가보안법 자체를 재평가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씨의 합격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씨가 말한 그러한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많은 기업들이 응시자들의 학생시절의 행동을 문제삼아 채용을 기피하고 있듯이 사회가 그러한 사람들을 포용하기를 계속 기피할 때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우리 사회의 앞날과 관련해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그들의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 높아질 것이며 그로 해서 우리 사회의 불안요인은 커져가기만 할 것이다. 또한 재능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학생시절의 행동 때문에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는 것은 그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인 손실이기도 한 것이다.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이나 외곬의 사회인식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는 일이나 그러한 행동,그러한 사회인식은 기본적으로는 불행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사회적 불의를 지나쳐볼 수 없는 나름대로의 정의감에서 출발한 것이라면,또 이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의도라면 사회는 최대한의 포용력으로 감싸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가보안법만 해도 이제는 여야가 개정 자체는 기정사실화할 만큼 시대상황도 바뀌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앞으로 이씨의 임용 여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자 한다.
한편 이번 일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경찰이 문교부의 요청에 따라 발령을 앞둔 예비교사들에 대한 신원조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보도다. 공안당국도 아닌 문교부가 그러한 요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슬픈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체적으로는 그 포용의 폭이 너무도 좁다는 사실에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체제 자체를 거부하고 전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회적 제재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비판세력이라면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살찌우는 길이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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