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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27) 장검(長劍)을 빼어 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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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장검(長劍)을 빼어 들고
남이(1441∼1468)

장검을 빼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
대명(大明) 천지(天地)에 성진(腥塵)이 잠겨세라
언제나 남북 풍진(風塵)을 헤쳐볼꼬 하노라

-청구영언(靑丘永言) 진본(珍本)

영웅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대

남이(南怡)는 태종의 외손자이자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람의 사위이다.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26세에 병조판서가 된 천재형 인물이다. 이 시조는 이시애의 난(1467)과 건주의(만주 길림성)를 평정하고 돌아올 때 지었다. 환하고 넓은 세상에 전운이 자욱하니 북쪽 여진과 남쪽 왜구의 침입을 평정하고자 하는 기백과 포부를 노래하고 있다. 그가 지은 한시 한 수가 전한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이십미평국(南兒二十未平國)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뒷날 누가 대장부라 불러주리오

남이를 총애하던 세조가 죽고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예종이 즉위하자 노골적으로 좌천시켰다. 이 시의 ‘미평국(未平國)’을 ‘미득국(未得國)’으로 날조, 역모라고 참소당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영웅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대의 비운(悲運)이라고 하겠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어느 시대에나 비정(非情)한 음모(陰謀)가 있을 수 있다. 인재를 알아보는 밝은 눈과 넓은 마음이 국운(國運)을 연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