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영원한 진보는 없다, 새로운 진보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윤석열 정부와 진보정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조선전기 사림은 훈구파에 맞서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세력이었다. 왕조 개창과 왕자의 난, 세조의 정변에 이르기까지 격변기에 공을 세웠던 훈구파들이 주도하는 정치에서 학문과 지식이 높은 지식인들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들은 성리학에 근거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 체계를 세우고, 과거를 통한 관료제를 만들었다.

성리학이 갖고 있는 합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던 사림들은 시대의 진보 스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진보가 될 수 없었다. 수백년 동안 정권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당쟁이 계속되었고, 양란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반성도 없이 근본주의에 빠져들면서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조선의 패망과 식민지화를 지켜봐야 했다.

시대를 읽는 능력이 진보의 힘
권력 중심에선 변화 보지 못해
새 좌표 못만들면 혁신 어려운데
상대가 못 하기만 기대할 건가

독립협회에서 부일전범으로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성리학 근본주의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개혁을 추구했던 개화파는 시대의 선구자들이었다. 성리학에서 오랑캐로 규정했던 청으로부터 서구의 문물과 상업, 그리고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개화파는 강화도 조약 이후의 위기 상황 속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지만, 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추진했고, 갑오개혁에도 기여했다.

독립협회를 만들고, 신문을 발간하였으며, 만민공동회와 같은 집회 결사를 통해 대중들을 계몽하여, 수백 년 간 계속된 군주제를 개혁해 입헌군주제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노력이 실패하자 일본의 힘을 빌려서까지 군주제를 없애려 했고, 결국 식민지화에 협조하였다. 식민지 시기를 통해 이들은 근대화를 이끄는 진보적 선구자가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에 협조하는 매국노이자 전쟁범죄자로 전락했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들은 자신들의 정변을 ‘혁명’으로 명명했다. 4·19 혁명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50년대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부정축재자들을 처벌하고 이승만 독재를 위해 일했던 부패한 장성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깡패들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사회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보수의 카르텔

이들은 지주나 부패한 정치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난 군인들이 한국 사회의 근대적 개혁을 이끌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196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도 박정희가 국민들의 눈에 진보로 비쳤기 때문이었다. 근대적 교육을 받은 전문 관료, 법조인, 언론인들을 등용했고, 1950년대와 달리 근대적 관료제도와 테크노크라트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경제성장 시대 정책의 주역들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혁명가로 지칭한 군사지도자들의 진보성은 이중적이었다. 근대적인 기재들을 자신들의 정권 연장에 이용했으며, 한일협정을 거치면서 대외관계에서의 자존감을 스스로 포기했다. 3선 개헌을 전후해 이승만 정부와 다름없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자본주의의 제도적 특징을 이용하여 기득권의 뿌리를 더 깊게 뿌리내리도록 했다.

근대적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보여주는 관료와 법조계, 그리고 언론인은 정치인, 기업가와 카르텔을 형성하였다. 이 카르텔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림과 같은 역사를 밟았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불공정을 양산해내는 기초가 되었다. 남미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궁정전투’가 한국사회에 형성된 것이다. 때로는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혼인 역시 강고한 보수의 카르텔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여당이 된 야당

1960년대 이후 독재에 반대하는 야당과 재야는 유신체제의 막을 내린 주역이었다. 야당 내 신구파의 갈등, 각목 전당대회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1970년대 신민당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이에 1978년 12월 총선에서 유신정권의 관권 개입 속에서도 야당이 여당보다 더 높은 득표를 기록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신군부 하에서도 민주산악회와 민추협은 1987년 민주화를 주도했다. 비록 이들이 단일화의 실패로 인해 국민이 이룩한 민주화를 신군부에 다시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기 금융실명제, 하나회 철폐, 한·일 뉴 파트너십 선언, 남북 정상회담은 전통 야당 정치세력들이 이루었던 한국 사회의 큰 진보였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었다. 여당을 경험한 이후 이들의 목적은 야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회의 진보나 당위성과 관계없이 이들의 목표는 여당이 되거나 최소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특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이합집산과 철새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586이 된 386

386세대로 대표되는 학생운동 세력은 야당, 재야와 함께 6월 민주 항쟁을 이끈 주역이었다. 나이가 어렸기에 바로 정계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에 의해 1990년대 중반 이후 386세대가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진보의 상징이었던 386세대는 점차 정치의 중심에 다가서기 시작했고, 486이 된 2000년대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정치의 중심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9년간의 보수 정부 시대에 야당의 중심에서 활약하면서 586이 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나이도 한국 정치의 중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20년이 넘도록 한국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왔기에 경력이나 명분에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586은 진보가 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정치의 중심에 있으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또 다른 기득권을 만들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강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못했다.

왜 진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갔을까? 진보의 첫 번째 조건은 시대를 읽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 서면 사림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읽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진보’가 아니라 과거의 ‘보수’를 도와주는 세력으로 보이게 된다.

지금 한국의 진보는 좌표를 잃고 있다. 어쩌면 그 현상은 이미 2012년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보수의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먼저 들고 나왔음에도 어떠한 위기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진보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MZ 세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만 바라보는 진보, 더는 안돼

2017년의 대선과 2020년의 총선은 586으로 대표되는 진보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두 선거의 결과는 진보가 계속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못하고 있는 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때문이었다. 2022년 대선 역시 ‘누가 누가 더 못하나’의 선거였다는 자조 섞인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모든 시대가 진보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변화해 나간다. 경제적·사회적 진보에 필요한 정치적 진보가 있어야 인류 역사는 발전해 나간다. 21세기 이후 사회적 변화가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면, 그에 맞는 진보 정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진보의 내용도 빠르게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변화해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진보의 좌표를 세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남이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승리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는 진보의 내용과 좌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똑같은 고민이 보수에도 필요하다. 건전한 보수가 있어야 건전한 진보가 가능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386이 586이 되었다. 386을 지지했던 20, 30대 국민들은 이제 40, 50대가 되었다. 30년 전 진보를 지지했던 국민들이 청년세대였다면, 이제 그들은 기성세대의 중심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와 세대의 등장에 맞는 진보의 좌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회의 혁신과 진보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에서 기존 정치체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진보는 언제까지 과거만 바라보고 상대가 못하기만 기대하고 있을 것인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