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 게임보이와 함께였던 인생 최고의 순간

중앙일보

입력 2022.04.20 07:00

업데이트 2022.04.20 07:40

#INTRO: 당신의 가장 좋았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회고절정'이란 말, 들어봤어요? 회고(回顧), 뒤를 돌아보니 절정(絶頂), 내 삶 중 최고의 순간이었던 시절. 회고절정(reminiscence bump)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뜻하는 인지심리학 용어랍니다. 내 성격과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시기,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과 사물은 평생 흔적을 남깁니다. 긴 인생 여정에서 오늘의 경험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요?

제게도 회고절정의 아이템이 있어요.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죠.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학교에 가지고 왔던 '게임보이 컬러'가 너무 갖고 싶었어요. 전자 상가에 가서 게임기를 사려면 왕복 반나절은 기차를 타야 했지요. 게임기를 사러 홀로 교외로 나갔던 그 순간이 제 인생의 회고절정 아니었을까요?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배보다 배꼽이 큰 게임팩의 감질나는 매력

게임기 하나에 이 세상 모든 게임이 들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닌텐도는 게임을 하려면 값비싼 게임 타이틀을 사야 해요. 20년 전 게임보이 컬러의 본체는 약 9만원, 타이틀은 2만~4만원대였어요. '포켓몬스터', '마리오' 등 오리지널 타이틀의 가격은 대체로 4만원이 넘었죠. 타이틀 세 개만 사도 본체 가격을 뛰어넘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죠.

그래서 타이틀을 하나 사면 여러 번 리셋해서 플레이하곤 했답니다. 재밌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교환도 했어요. 지금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중고품을 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거든요. 전자 상가를 기웃거리며 갖고 싶은 게임 타이틀 팩을 수첩에 적곤 했답니다. 지금도 어떤 것이 갖고 싶으면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는 게 습관이에요.

게임보이 [사진 닌텐도]

게임보이 [사진 닌텐도]

게임보이 GAMEBOY


1989년 4월 출시된 닌텐도 게임보이는 1억대 이상 판매된 휴대용 게임기의 시조다. 닌텐도는 게임보이 출시 당시 "달리는 자전거에서 떨어져도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다"며 내구성을 강조했다. 초기 모델은 흑백 액정을 탑재했고, 1998년 10월에 반사형 TFT(박막 트랜지스터) 컬러 액정을 탑재한 '게임보이 컬러'가 출시됐다. AA 건전지 4개로 약 35시간 플레이가 가능했고, '테트리스'와 '포켓몬스터' 등 히트작에 힘입어 지금까지 총 1억1869만대가 판매된 장수 게임기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닌텐도가 인기몰이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게임보이 컬러로 닌텐도에 입문했어요. 그렇지만 게임보이보다 ‘패미컴’이 익숙한 분들도 많겠죠? 패미컴은 TV에 연결해서 대화면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닌텐도 스위치의 조상이에요. 지금까지 이어지는 닌텐도의 게임 비즈니스를 만든 것도 패미컴이죠.

패미컴의 인기를 끌어올린 주역은 1985년 9월 출시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어요. 마리오, 루이지를 조작해 쿠파 일당이 납치한 피치공주를 구하는 액션 게임이죠.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풍부한 액션, 귀에 남는 배경음악이 매력 포인트예요. 닌텐도는 패미컴과 마리오의 성공을 발판삼아 이후 게임보이, 슈퍼 패미컴, 닌텐도64, 닌텐도DS, 위(Wii) 등을 차례로 생산합니다.

패미컴 [사진 닌텐도]

패미컴 [사진 닌텐도]

패미컴 FAMILY COMPUTER

패미컴(한국명: 컴보이)은 닌텐도의 첫번째 가정용 소프트 교환식 게임기로, 1983년 7월 15일 출시됐다. 출시가는 1만4800엔, 우리 돈으로 약 15만원이었다. 본체에 탈착 스위치, 컨트롤러에는 십자 버튼과 마이크를 장착한 것이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패미컴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등 히트작을 기반으로 출시 후 20년 이상 생산돼 전 세계에서 총 6191만대가 판매됐다.

어른이 돼도 닌텐도

게임보이, 닌텐도DS, Wii 등 닌텐도와 시간을 보내니 훌쩍 어른이 됐어요. 학업에, 직장 생활에 시간을 뺏겨 게임을 할 시간은 줄었지만, 신작 타이틀을 볼 때마다 뜨거운 추억이 솟아오른답니다. 최근엔 콘솔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 빠졌어요. 스위치는 패미컴과 게임보이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게임 플랫폼이에요.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을 갖췄고, 패미컴처럼 TV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죠.

스위치는 콘솔형 휴대용 게임기란 독보적인 포지션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어요. 닌텐도에 따르면 이 게임기는 2017년 출시 후 지난해까지 총 1억354만대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죠.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의 플랫폼보다 더 빠르게 판매량 1억대를 달성했고, 전작인 Wii의 판매량인 1억163만대도 넘었습니다. 스위치용 타이틀도 지난해까지 총 7억6641만장 판매됐어요.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 [사진 닌텐도]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 [사진 닌텐도]

닌텐도 스위치 NINTENDO SWITCH


스위치는 닌텐도가 출시한 Wii U와 3DS의 뒤를 잇는 8세대 닌텐도 게임기다. 2017년 3월 3일 일본,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아공, 홍콩에서 1차 발매됐고, 같은 해 12월 1일 한국에서 정식 발매됐다. 2019년 9월 20일엔 가정용 기능을 뺀 염가판 라이트(Lite) 모델이, 2021년 10월 8일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몇 가지 개선이 이뤄진 고급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모델이 출시됐다.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 타이틀은 같은 기간 총 4335만 장 팔린 '마리오카트8 디럭스'다.

닌텐도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투를 벌이는 크로스오버 격투 액션 게임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얼티밋' [사진 닌텐도]

닌텐도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난투를 벌이는 크로스오버 격투 액션 게임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얼티밋' [사진 닌텐도]

포켓몬, 마리오, 젤다…닌텐도의 보물들

판매량에 날개를 단 닌텐도, 비결은 무엇일까요? 닌텐도 마니아인 저는 '누구나', '새로운', '좋아하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꼽고 싶어요. 닌텐도의 게임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살벌한 스토리라인이 없고 밝은 분위기가 특징이죠. 새로운 기술로 UX(사용자 경험)를 키우는 전략도 유효했어요. 골판지 완구인 '라보(LABO)', RC카를 AR(증강현실)로 조종하는 '마리오 홈 서킷'이 그 예죠.

포켓몬, 마리오, 젤다 등 자체 IP(지식재산권) 덕분이기도 해요. 수십 년째 사랑받는 IP를 보유한 덕분에 닌텐도는 IP 기반인 게임 시장의 꼭대기에 있어요. 게임 업계가 인기 IP에 목말라 있는 상황에서 성공이 보장된 오리지널 타이틀을 꾸준히 출시하며 성과를 냈죠. 20년 전 패미컴, 게임보이에서 구동됐던 포켓몬, 마리오, 젤다 시리즈는 10년, 20년 뒤에도 소비자를 사로잡을 겁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시대…특유의 폐쇄성은 숙제

닌텐도를 말할 때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키워드가 있죠. 폐쇄성입니다. 닌텐도는 패미컴부터 스위치까지 철저하게 독자적인 사양에 기반을 둔 제품만을 출시해왔어요. 반도체, 운영체제(OS) 등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이에요. 특유의 폐쇄성은 포켓몬·마리오 등 히트작이 탄생하면서 결과적으로 득이 됐죠. MS·소니가 양분하던 게임기 시장에서 포켓몬, 마리오를 앞세워 삼국지 구도를 만들었고요. 독점 IP로 만든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기 판매를 견인한 거예요.

그런데 닌텐도가 마주한 지금은 과거와 다릅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게임기를 외면하기 시작한 거예요. 패러다임이 변했죠. 관련해서 2015년 일본 최대의 게임 행사인 도쿄 게임쇼에서 발표된 재밌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과 콘솔 게임을 비교한 건데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콘솔 게임의 모바일 게임 이용자 수는 콘솔보다 2배나 많았어요. 별 4점 이상 높은 평가를 받은 게임도 모바일이 6개인 데 반해 콘솔은 3개뿐이었죠.

스마트폰 혁명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가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죠. 잠깐 한눈을 팔거나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뒤처질 수 있어요. 여전히 자신들만의 게임 콘텐트로 역전을 꿈꾸는 닌텐도. ‘오락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회사의 모토, 계속 지킬 수 있을까요?

닌텐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마리오 화투' [사진 닌텐도]

닌텐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마리오 화투' [사진 닌텐도]

#뱀 발: 닌텐도는 화투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닌텐도는 1889년 9월 23일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사람이 담배 가게를 개조해 창업한 화투 제조사로 출발했어요. 닌텐도를 일개 화투 회사에서 세계적인 비디오 게임 회사로 키운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2002년 퇴임 전, 지난 52년의 소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원이 회사에서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우연히 보고 사업을 전환했다. 닌텐도의 성공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일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사명 닌텐도(任天堂)의 의미처럼, 변화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가치관이 닌텐도의 일등 공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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