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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정식 "거꾸로 가나" 장관지명 20일전 尹핵심공약 비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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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강남구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강남구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대선 공약을 비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자의 비판은 윤 당선인의 당선이 확정(3월 10일)된 보름 뒤였고, 그가 고용부 장관 후보자로 인선되기 20일 전이었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25일 한국노동경제학회, 한국노동법학회,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등 노동 3대 학회가 주최한 공동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학계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진단하고, 제안하기 위한 공개 학술 토론회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3월 18일)한 지 일주일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자는 윤 당선인의 정책 구상과 결이 다른 발언을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학회 인사는 "전반적으로 시장을 중시하는 윤 당선인과 달리 노조 중심, 운동가적 시각을 드러내며 윤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자는 윤 당선인 측을 "현 집권 세력, 당선인 세력"이라고 지칭했다. "간발의 격차로 합격"이라고도 했다. 그는 "새 정부가 '뭘 좀 해보겠다'고 그랬는데, 여소야대나 간발의 격차로 합격한 걸 보면 쉽게 노동법을 손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진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장관 후보 지명 직전이었지만 국무위원 후보자인 그의 위치를 고려하면 윤 당선인이 공약한 시장 질서 회복과 제도 개선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 3대 학회가 3월 25일 연 공동정책토론회에서 尹 정부 노동정책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한국노동경제학회

노동 3대 학회가 3월 25일 연 공동정책토론회에서 尹 정부 노동정책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한국노동경제학회

실제로 이 후보자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윤 당선인의 핵심 노동공약으로 꼽히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그는 "직무형 인사관리 임금체계(개편)를 얘기하는데, 디지털화, 초연결, 융복합 이런 산업변화 추세하고도 안 맞다.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급제에 대해서도 "과도한 성과주의가 낳는 부작용, 그 부작용은 자살, 스트레스, 노동강도 강화 등 많은데, 이걸 완화시키기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 고정급의 일정한 수준 이상을 맞춰서 (성과급제를) 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도입할 여지가 있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 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성과급을 주장한 것은, 성과급의 기본 원칙인 성과에 따른 변동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웃돈을 받겠다는 것이어서 (시장에서) 먹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공약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것과 달리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차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발제자가) 기간제법 폐지를 얘기했는데, 굉장히 위험하다"며 "문제가 있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한다든가, 대선 과정에서 '공정수당'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두 가지는 이재명 후보가 내건 약속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어차피 협치한다고 그랬으니까 남의 것도 맞으면 갖다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격차 해소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노·자(勞·資), 즉 노동자와 자본가의 격차를 강조하기도 했다. 모 경제학자는 "자본가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노동 운동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또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 집중과 거대화를 꿈꿨는데, 정부와 기업의 비협조 내지는 반대로 (실현이) 안 됐다"며 정부와 경영계에 부정적인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재정의를 합니다"라며 "기업을 단위로 하는 노조는 노조가 아님, 초기업을 단위로 하는, (그것을 통해) 힘의 대등성을 전제로 (하면) 노사 간의 자율·자치가 가능해지고, 노사관계의 사법화 경향을 막고, 정부와 국가에 대한 의존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별 노조와 같은 거대 노조 중심으로 노사관계의 판을 재구성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후보자의 운동가적 입장에서의 심정은 이해한다"면서도 "정책 담당자로서 한국 경제성장의 구조와 역사, 시장 등을 고려한 시각 교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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