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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깜짝 인하’ 나선 러시아…돈 풀어 경제 살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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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러시아가 기준금리를 3%포인트 ‘깜짝 인하’ 해 눈길을 끈다. 지난 2월 말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파격 인상했던 러시아 중앙은행이 한 달여 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확 바꾼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폭락했던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안정되자 돈 풀어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연 20%에서 17%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최근 루블화 환율 하락(가치 상승)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인상 속도가 크게 둔화했다”며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16.7%까지 치솟던 소비자 물가가 이달 들어 낮아지기 시작했다는 게 러시아 중앙은행 측의 주장이다.

러시아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러시아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러시아 통화정책 변화에 관심이 쏠린 데는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 뒤인 지난 2월 28일만 해도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대폭 인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금융당국은 루블화의 추락에 황급히 방어선 구축에 나선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지난달 초 달러당 120루블까지 급락했던 루블화 가치는 8일 기준 76.08루블까지 올랐다. 러시아가 외화 송금 제한, 천연가스 수출 대금 루블화 결제 의무화 등의 통제 조치로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영향이다. 일단 러시아의 ‘루블화 구하기’ 정책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 밖에선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불안감’ 표출로 해석하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어려운 내부 경제 상황에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는 게 외신의 공통된 분석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는 “예정에 없던 러시아의 금리 인하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 대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옮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리트저널(WSJ)도 “금리 인하가 극단적인 비상조치들을 철회할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러시아 경제는 (현재)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잔인한 경기 침체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경제의 균열은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S&P글로벌에 따르면 러시아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 2월 48.6에서 지난달 44.1로 하락했다. 2020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수가 50을 밑돌면 경기가 위축 국면에 있음을 보여준다. 서방의 제재로 외국 기업이 사업장을 폐쇄하면서 러시아 제조업은 타격을 받고 있어서다. 생산 활동이 급감하면서 실업률도 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지난달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의 실업률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9%를 넘어설 전망이다.

월가를 비롯한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도 러시아 경제가 역성장 할 것으로 예측한다. 최근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러시아의 경제가 15% 역성장하고 내년에 3% 추가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올해 러시아 경제가 10%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루블화 가치 안정세가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 전문가는 “러시아가 외화로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환이 도래하면 루블화가 다시 압박받을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외국 기업의 자산 매각과 현금 인출이 시작되면 루블화의 가치 추락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러시아 채무불이행(디폴트)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달 초 미국 재무부가 미국 금융기관의 러시아 정부 계좌에서 이뤄지는 달러화 채무의 이자 결제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다. 지난 4일 러시아의 이자 지급이 이뤄지지 못했고, 유예기간(30일) 후인 다음 달 4일 사실상 채무불이행 할 가능성이 크다. 9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전날 러시아의 외화표시채권 신용등급을 CC 등급에서 선택적 디폴트를 의미하는 SD등급으로 강등시켰다. SD등급은 전체 국가 채무 가운데 일부를 상환하지 못할 때 적용되는 등급으로, 채무불이행을 의미하는 디폴트의 직전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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