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돌풍에 긴급 문단속/청와대 4자회동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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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합당때 합의… 내년 공론화 필연/등원 오래 끌면 개헌일정 차질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민자당내 기류가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24일 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김종필ㆍ박태준 최고위원간의 수뇌부 4인회동에서 내각제 개헌의 내년초 추진이란 기본 윤곽을 분명히 잡아놨다.
물론 회동내용의 표면적인 강조점은 올 12월말까지 내각제문제를 덮어두고 이와 관련된 당내 불협화음을 봉하는 데 두어졌다. 그러나 이날 논의의 비중은 내년초 내각제 개헌을 다시 다짐하는 데 있었고 내각제 개헌에 소극적인 김영삼 대표도 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날 박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의원총회에서 있은 민정ㆍ민주계 일부 의원간의 논쟁이 내각제문제의 불확실한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김 대표가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며 『내각제를 연말까지 거론치 않겠다고 한 것은 개헌을 추진하느냐,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추진시기의 선택문제』라며 강한 추진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내각제 추진은 우리(당 수뇌부 4자)가 여러 차례 확인한 합의사항이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월22일 3당합당시에 약속한 것이고 지난 5월6일 1노2김의 합의문에서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내각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집념은 알려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당 수뇌부 회동이 있을 때마다 당내의 시비를 정리하겠다는 뜻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여름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은 「야당과 국민이 반대하면 개헌이 안된다」는 김 대표의 논리를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내각제문제를 불투명한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다시 개헌추진 쪽으로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은 앞으로 정국전개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날 회동결과에 대해 민정ㆍ공화계는 상당히 고무돼 있다.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만난 박 최고위원은 『이제 내각제 추진은 적절한 시기포착만 남았다』고 했다.
김종필 최고위원은 공화계 의원들에게 『이제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민주계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김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청와대회동의 내용을 듣고 난 뒤에도 『강령에 규정했다는 것은 모법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추진시기나 방법은 상황에 따라 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내각제를 추진하는 민정ㆍ공화계 개헌파나 청와대측의 구도는 대충 2단계로 잡혀 있는 것 같다.
올해말까지는 1단계로 「연내 사회ㆍ경제 안정」 약속에 따라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안정된 여건을 조성하고 2단계로 91년부터 개헌공세에 나선다는 것.
때문에 연내에는 광범위하게 여론을 조성하고 내년초 개헌 총진군에 앞선 당내 이견조정에 역점을 둔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최근 몇차례에 걸쳐 『3당통합의 전제가 아직 유효하다』는 등의 통합약속을 다짐하는 것도 가장 큰 문제인 김 대표와 민주계의 소극적 입장을 되돌려놓자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측은 이런 개헌파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어 그 허점을 찔러나간다는 생각이다.
김 대표도 5ㆍ6합의서를 부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단 금년에는 개헌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으므로 이를 빌미로 해서 민정ㆍ공화계의 개헌 조기 공론화를 억눌러두고 내년에 들어가면 선거분위기로 덮어버리자는 것이다.
현행 선거법으로는 92년 1월초부터 국회의원 총선을 실시할 수 있고 따라서 빠르면 내년말에 공천자를 확정해야 하므로 내년엔 어차피 총선분위기가 지배한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내년 2,3월에 지자제 의회선거가 시작되면 선거바람은 연초부터 불어닥칠 것이며 선거가 시작되면 개헌론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김 대표는 노 대통령의 채근이나 민정ㆍ공화계의 압력이 커지면 내각제에 매력을 느낀다거나 측근 등을 통해 내년초엔 내각제에 관한 국민의사를 확인하겠다는 말들을 퍼뜨리면서 금년말까지 공론화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시간을 벌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민정ㆍ공화계의 개헌 압력과 민주계의 시간벌기 작전으로 민자당의 당내 이견조정작업은 상당히 혼선을 빚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변수로 영향을 미칠 것이 평민당의 등원 등 국회정상화 문제다.
4자회동에서는 평민당을 국회로 복귀시키기 위해 개헌에 관해서는 일단 금년엔 논의하지 않는다고 합의해 김 대표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개헌을 추진할 경우 국민투표 등을 감안하면 기초자치단체에서 정당개입을 허용할 수 없어 이를 거부키로 했다.
이러한 지자제협상안을 평민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정상화가 난항하거나 평민당이 등원하지 않으면 정치의 부재나 불안정이란 새로운 상황이 조성되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만약 등원협상이 삐긋 엇나가 평민당의 등원이 불투명해지면 시간이 흐를수록 야당 없는 국회의 무용론에 부닥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불안이 고조되면 개헌론은 또 꺼내기 어렵게 될 것은 자명하다.
24일의 청와대회동은 내각제의 주요문제를 정리했지만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국회정상화 문제부터 난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개헌추진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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