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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대희의 건강한 미래

디지털 플랫폼 정부와 원격의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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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발전위원장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발전위원장

전남 신안군 퍼플섬이 유엔세계관광기구로부터 전 세계 32개국 44개 마을과 함께 제1회 유엔 세계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됐다. 퍼플섬은 ‘1004섬’으로 대변되는 신안군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반월도와 박지도에 자생하는 도라지꽃의 보라색을 콘셉트로 해서 다리·건물·지붕은 물론 주민들 옷과 길가에 핀 꽃들까지 섬 전체를 퍼플색으로 입혀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름다운 섬의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17만 명에 가깝던 인구가 50년이 지난 지금 4만 명도 되지 않는다. 또한 현재 주민 10명 중 4명은 65세 이상의 어르신이다. 고혈압·당뇨·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이 많아 병원 갈 일도 많은데 가까운 보건지소를 가려고 해도 반나절이나 걸린다. 이런 의료취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은 반면 의료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원격진료
국민적 공감대 속에 넓혀가야
의료계·기업·정부의 협력 필수
코로나 과학방역에도 활용을

건강한 미래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건강한 미래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벌써 20년도 넘는다. 도서 산간 지역 주민 등 취약 계층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의료 질의 저하, 의료사고 등의 우려로 우리나라는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가 법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코로나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돼 현재까지 비대면으로 진료받은 건수가 400만 건에 육박한다. 따라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원격의료가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 윤석열 당선인도 원격의료 사업 확대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코로나 과학 방역과 미래 성장동력 산업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분야가 원격의료다. 원격의료의 국내외 동향을 살펴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텔라닥은 미국 최대의 원격의료 회사로 회원 수만 4천만 명이 넘는다. 회원들의 혈압·체중·정신건강 등을 맞춤형으로 관리해주고 있었는데 재작년에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인 리봉고를 22조원에 인수해서 재택 혈당 측정과 당뇨관리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최근에는 아마존과 함께 인공지능을 이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업무 협약했다.

중국 최대 보험회사인 핑안보험도 2015년 핑안굿닥터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여 원격진료 플랫폼을 출시했는데 현재 회원수가 3억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카카오가 헬스케어 자회사를 설립하여 개인건강관리 서비스를 준비 중이고, 케이비손해보험도 디지털 헬스회사를 설립해서 개인건강관리 앱을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원격의료의 핵심은 원격모니터링에 필수적인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기술 경쟁력이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들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받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심사와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적정한 수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5월에 출범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디지털 헬스 디바이스의 기술 평가, 안정성과 효능 평가, 수가 산정 등의 전 과정을 한 곳에서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것 못지않게 국내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다.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의료계와의 파트너십이다. 지금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전 인구의 30%에 육박하고 하루 사망자는 500명까지 이른다. 의료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코로나 확증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지속가능한 의료 체계로 정착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문제가 의료계와 정부 간의 신뢰 회복이다. 원격진료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의 질 저하,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가 산정 등 산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 오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 비대면 진료’라는 주제로 한국원격의료학회가 주관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원격의료의 국내 현황과 미래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앞으로 디지털 원격의료 분야가 신 성장 동력 산업으로서 국가 미래 먹거리의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의 공공성 확립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의료계·기업·정부의 협업을 기대한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발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