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임기와 루블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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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은 통일 후 경제형편이 아주 나빠졌다. 동독경제를 떠맡은 때문이다.
콜 총리는 하도 답답해 교회를 찾아가 신에게 하소연했다.
『독일경제는 언제쯤이나 전망이 밝아지겠습니까?』
신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자네 임기 중에 어쩌면 실현될지도 모르겠네.』
뒤늦게 그 소문을 들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다시 신에게 질문을 했다. 『미국은 언제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자네 임기 중엔 좀 어려울 것 같군』하고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난번 미소정상회담 때 부시로부터 그 얘기를 들은 고르바초프가 서둘러 신 앞에 나아가 정중하게 질문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신은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글쎄,내 임기 중엔 아무래도 어렵겠어.』
이 얘기는 요즘 소련에서 굴러다니는 조크 중의 하나다. 소련경제가 정말 어느 정도인지는 다른 통계숫자는 다 덮어두고 우선 루블화의 환율 하나만 봐도 짐작이 된다.
소련에 가면 길거리의 가게들이 텅 비어있는 것을 예사로 보는데,어쩌다 물건이 있는 상점을 보면 예외없이 영어로 「하드 커런시」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경화,달러만 받는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의 「카사」(외화교환소)에선 달러당 1.6루블씩 바꾸어 준다. 때로는 1.56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베르오츠카」라는 달러전용 상점엘 가면 환율은 무슨 영문인지 달러당 0.6루블로 올라간다. 「카사」의 환율과는 무려 2.6배 차이다.
바로 그 베르오츠카를 나오면 멀쩡한 소련청년들이 다가와 달러화를 바꾸라고 한다. 레이트가 얼마냐고 물으면 15루블을 주겠다고 한다. 너무 비싸다는 시늉을 해보이면 그 다음엔 값이 따로 없다. 부르는 것이 값이다. 나중엔 20루블을 주겠다는 흥정까지 나온다. 모두들 달러에 걸신들린 사람들 같다.
오는 새달부터 소련은 평가절하를 단행,달러당 1.8루블로 바꾸어준다. 하지만 그것으로 「달러화 걸신」이 풀릴 것 같지는 않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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