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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솔로몬군도 문명의 때묻지 않은 미개의 비경이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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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교통수단의 발달로 빠르고 편안하게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지구가 좁아졌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들로 넘실대고 이제는「미지의 세계」라는 말도 없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그러다 보니「환상의 섬」이니「지상 최후의 낙원」이니 하는 수식어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곳도 여러 군데 등장했다.
특히 아직은 그리 북적대지 않는 타이티·사모아 같은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은 어딘지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아직 가 봐야 할 많은 곳이 남아 있는 우리에게「그림의 떡」처럼 보여지는 곳이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이다.
세계를 5대양 6대주의 개념으로 나누어 보면 오세아니아에 속하는 남태평양 섬들은 호주를 제의하고 민족과 언어의 차이에 따라 폴리네시아·미크로네시아·엘라네시아로 구분된다.
「많은 섬」이라는 뜻의 폴리네시아는 대체로 날짜변경선인 경도 1백80도선 동쪽 지역을 말하는데 하와이·뉴질랜드·이스터섬을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범위라 생각하면 틀림없다. 뉴질랜드·사모아·통가 등 이 여기에 속하는데 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바다 밑에서 화산이 폭발해 생겼거나, 산호 층이 뭉쳐서 생긴 산호초 섬이다.

<화산재로 뭉친 섬>
폴리네시아의 서쪽으로 적도 윗 부분이 미크로네시아인데「작은 섬들」이라는 뜻으로 마셜·마리아나·캐롤라인·길버트 등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군도로 구성되어 있다. 미크로네시아 서부의 주민은 대부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인과 비슷한 몽골로이드에 가깝고 독일이나 스페인의 식민지를 거쳐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고 있다.
날짜변경선 서독으로 적도이남 지역이 엘라네시아.
그린란드 다음으로 넓은 섬인 뉴기니를 비롯하여 피지·솔로몬군도 등 이 멜라네시아에 속해 있다. 열대림이 우거진 커다란 섬들이 수평선에 검은 점처럼 투영돼 보이기 때문에「검은 섬들」이라는 뜻의 멜라네시아란 이름이 붙었는데 대부분 환태평양 조산대의 일부로서 습곡산지에 화산재가 쌓여 이루어진 섬이다.

<2차 대전 격전지>
멜라네시아 인은 그 섬의 뜻처럼 흑인종들. 눈이 쭉 찢어지고 큰 입을 갖고 있어 우리네 기준으로는 좀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남태평양의 여러 섬나라들 가운데 아직도 미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고 가난을 면치 못한 곳 중의 하나가 솔로몬 군도다.
2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던 데다 수년 전 적도지방의 사이클론이 휩쓸어 그나마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엾게 만들기까지 해 미국·영국·호주 등지에서 구호물자를 실어다 주기까지 했던 적도 있다.
4백여 년 전 스페인 탐험가 멘다나에 의해 발견된 과달카날 섬을 중심으로 6개의 주요 섬과 1백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솔로몬 군도는 1870년 무렵에는 원주민들이 백인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나가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영국의 보호령을 거쳐 일본군의 침입을 받고 태평양전쟁의 격전을 치르며 폐허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미군들의 막사가 원주민들의 집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녹슨 탱크가 수도 호니아라에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일본 전사자 위령탑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모금한 돈으로 조각 작품도 세워져 있는데 전
적지 순례를 구실로 몰러 온 한 일본인 관광객의『전쟁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가소롭다 할지 가증스럽다 할지 퍽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만큼 솔로몬 사정은 딱하다.
일본군이 솔로몬에서 패배한 큰 이유중의 하나는 한번 물렸다 하면 살아남기 힘들만큼 지독한 이곳 모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 중 사망한 일본군 중에는 강제로 징용돼 억울하게 제물이 된 한국인도 있었을 터인데 박물관에 걸려 있는 당시 흑백사진의 처참한 장면을 보노라면 남태평양 가난한 섬의 비극이 어쩐지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낙천적 주민 생활>
그래도 솔로몬 사람들은 태평하다. 일하기 싫어하는 원주민들은 외국인 건설회사에서 막일을 하며 받은 품삯을 쓰느라 4∼5일씩 안 나오기도 하고, 나무그늘 아래에 부부가 누워서 머리 속의 이를 서로 잡아 주기도 한다. 문득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공통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남태평양 관광의 핵심은 바로 이처럼 때묻지 않은 원시의 소박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염되지 않은 상큼한 공기, 열대의 더위를 식혀 주는 넓고 푸른 바다, 의식주 걱정으로 아옹다옹할 필요가 없는 생활조건….
이런 것이 주민들을 순박하고 낙천적으로 만드는 요소라면, 문명사회에 찌든 외래 여행객들은 겉으론 그 미래와 게으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경화스러움을 부러워하게도 되는 것이다
요즘 많이 날리는 책인『빠빠라기』에서도 남태평양 투이아비 추장이『백인들은 하찮은 쇠뭉치나 종이에 집착하여 병들고「생각한다는 이름의 중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물건이 너무 많아 가난에 빠져 있다』고 개탄하고 있음을 보면 어느 것이 정말 사람다운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국 사람들의 조급함은 여기에서도 소문이 나 있다. 이곳에 진출한 토건회사 사람들 덕분인지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에서 재촉을 하자「코리안 퀵퀵, 솔로몬 슬로슬로」라는 대꾸가 나온다.
빤질빤질하게 검은, 늘어진 젖가슴을 드러내고 야자수 그늘 밑을 맨발로 걷는 원주민 처녀의 목에 걸린 하얀 조개껍질 목걸이, 대마초 성분이 들어 있는 듯한 비틀넛 열매를 질겅질겅 씹으며 보자기 같은 치마를 두른 토인 총각의 앞자락사이로 슬쩍 비치는 피부색깔의 물건이 끝없이 펼쳐진 남태평양 바다물색과 어우러져 있는 솔로몬 군도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직후의 에덴동산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문명인의 과장된 감정 탓일까.

<원시림서 사냥도>
▲파푸아뉴기니=솔로몬군도 위쪽으로 적도 가까이 까지 뻗쳐 있는 큰 섬. 역시 멜라네시아 권에 속해 있다. 얼굴에 문신을 그려 넣은 처녀들도 꽤 눈에 띄는 등 원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고급 호텔에 가면 레스토랑 문 앞에「정강차림 입장」이라는 팻말도 있을 만큼 문명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묘한 대조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닷새 정도의 일정으로 원시림에서 사냥을 하는 사파리 관광 코스도 있다.
▲바누아투=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군도 사이에 낀 작은 섬나라로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통치한다. 철자대로 읽으면 영어발음과 비슷해지는 간단한 표기법을 쓰는데 웬만한 대화는 대체로 알아들을 수 있다.
멜라네시아 권이 대체로 공통이지만 우리 기준으로는 조금도 예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여인네들 뿐이라 남자 여행객이 지조를 지킬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나라중의 하나이지만, 토속적인 분위기와 늙어서 10년쯤 살아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시정 넘치는 바닷가 풍경 등으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백 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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