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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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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눌 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변영노의「논개」중).
남원에서 지리산을 넘어 이곳에 와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 강에 몸을 던진 꽃 같은 기생 논개. 그 때문에 왜군에게 무참히 도륙 당한 진주사람들. 그 원과 한과 꽃같이 스러진 아름다움이 뒤섞여 흐르는 남 강은 새벽이면 물안개를 피워 올려 서부 경남의 중심으로 인구 25만 명을 품고 있는 진주를 신비스럽게 감싼다.
진주는 또 예부 터 선비를 많이 배출, 착한 일은 즐기고 옳은 일에는 분연히 일어서는 「낙선호의」의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특히『미를 귀히 여기고 이를 친하게 알아 편히 물러남을 가상히 여기고 탐욕함의 부끄러움을 알게 한 것은 실로 선생의 공이다』고 송시열이 숭모한 이 고장이 배출한 조선조 최대의 선비 남?? 조식의「안으로 밝고(경) 밖으로 결단함(의)」사상은 이 지역 사람들의 숨결에 배 있다.
이처럼 예부 터 선비들이 많고, 풍광이 수려하고 또 원과 한이 많은 진주는 이같은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시로 떠오르게 할 수 있는「시국」이다.
가위「시국」이랄 수 있는 진주의 문학전통은 서울로부터 천리나 떨어져 있는 지역이면서도 중앙문단과 발맞춰 우리의 현대문학사를 열어젖뜨린다.
동인지 중심으로 우리의 현대 문학사가 열리던 1920년대, 진주에서는 지방으로서는 최초로 1926년 고두동·홍우원 주재로 동인지『시단』이 창간됐다.『시단』에 이어 1928년 시인 김병호, 월북작가 엄홍섭이 이끄는 동인지『신 시단』이 창간되었으나 일제의 탄압 등으로 창간호로 그치고 만다.
한편 이 시대의 돈키호테가 되고자 스스로 호를 동기라 지은 시인 이경순과 조진대 및 이 고장은 물론 한국시단의 최원로 설창수씨 등 3명은 1925년 3인 시집을 간행, 진주 문학의 전통을 과시했다.
오로지 향토의 자연 속에서 교편생활과 함께 시작활동을 하다 지난 85년 타계한 이경순은 남강 변에 시비로 세워져 중앙에서 불러도 안 나간다는 남 명으로부터 이어진「불사문학」의 진주 전통을 고고히 나타내고 있다.
『신 시단』이후 침묵을 지키던 진주지방 동인 운동은 1939년 정태용·장태현 등 진주문인과 조연현·김상옥·김동리씨 등 진주 인근지역 문인들이 동인지『시림』을 3집까지 내면서 일어나다 일제 말 암흑기로 인해 그친다.
해방 이듬해「진주시인 협회」가 결성되고 협회의 기관지로『등불』을 4집까지 낸다. 이어 1939년「진주시인협회」가 발전적으로 해체,「영남문학회」로 바뀐다. 설창수씨의 주도로 1960년까지 기관지『영문』을 18집까지 내다 1962년「진주문인협회」로 전통을 넘긴「영남문학회」에는 백상현·이경순·유치환.·조 향·김보성·이윤수·노영란·이승자·최계락·조지훈·손동인·김동사·조진대 외 다수의 진주 및 진주인근 거주 문인들이 참여했다.
「영남문학회」는 특히 타년부터 자체 추건 제도를 두어 진주지역의 신진문인들을 배출해 냈다. 한편 1950년 이창호·김동일·김재섭 등 이 중심이 돼「군상 동인 회」를 결성, 동인지『군상』을 3집까지 내며 활동했다.
1960년대에 진주에는 몇 개의 동인화가 발족돼 동인지 중심의 문단이 형성됐다. 1960년 10월 조인영·김환주·문의식·박용수·이 덕·하택준 등은 시화전 개최를 계기로「시 가족 동인 회」를 결성, 1966년까지 동인지『영도선』을 5집까지 내며 활동했다. 1966년에「남가람 동인 화」와「흑기 동인 회」가 탄생했다.
70년대 들어서는 1972년「진주 문학회」가 결성돼 종합동인지 성격의『진주문학』을 2집까지 내였고 1976년에는「경남 수필 문학회」가 결성돼 오늘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80년대 들어서는「경남 여성 문우 회」「진주 문학 동호회」「청년 문학회」등의 동인이 결성돼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해 오고 있다.
1985년『글을 통해 참다운 여성 성을 계발한다』며 주부 13명으로 출범한「경남 여성 문우회」는 현재 주부회원 15명이 연 1회 동인지출간,「경남 여성 백일장」개최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순수 아마추어 문학동호인 모임인「진주 문학 동호회」는 40여명의 회원이 문학성계발과 함께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20대에서 30대 초의 젊은이 6명으로 구성된「청년문학회」는 민중문학을 지향해 나가고 있다.
한편 진주 문단 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개천예술제의 백일장. 1949년 국내 최초의 종합예술제로 시작돼 지금까지 개최돼 오고 있는 개천예술제 백일장은 그 동안 이형기·박재삼·신중신·박경용·서 벌·구자운·이제하씨 등 기라성 같은 문인을 배출, 중앙 문단에 진출시켜 한국문단을 짊어지게 했다.
1962년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진주문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진주 문인협회」(회장 강희근)는 현재 전 장르에 걸친 회원 39명으로 향토문학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매월「글 예술 사랑방 모임」, 연1회 기관지인『진주문단』간행과 함께 백일장·문학의 밤·시화전 등을 개최하며 진주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또 기관지와 함께 종합문예지 성격의『문예정신』을 펴내며 내년부터는 이를 계간 문예지 화 할 예정이다.
진주 문협은 또 작년「남명 문학상」을 제정, 올 첫 수상자를 냈으며 내년부터는 전국규모로 확산, 진주인의 가슴에 밴 남 명의 선비정신을 문학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진주=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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