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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외교·안보 난제 많아…위기관리와 전략적 접근 병행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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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부 출범 초 예상되는 위기와 대응법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TV에 나온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고각 발사된 이 미사일이 정상적으로 발사 됐다면 한반도 전역이 사정권에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뉴시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TV에 나온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고각 발사된 이 미사일이 정상적으로 발사 됐다면 한반도 전역이 사정권에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뉴시스]

8일 후면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5년마다 나침반이 바뀌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초기에 항상 준비가 부족하거나 취약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여건은 새로운 팀에게 업무를 익힐 시간을 허용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한 현안과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 새 도전들이 속속 몰려오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전후 거의 예외 없이 닥쳐온 크고 작은 위기를 되돌아보면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운영 준비 태세는 군의 안보 태세 이상으로 중요하다. 인수위가 정지 작업을 빈틈없이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수위 활동 기간 약 2개월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할 인수위와 새 정부 고위직들은 자신의 역할이 국익에 중차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다양한 외교·안보 도전을 감당하고 대통령에게 최고의 건의를 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정책 건의와 결정들이 얼마나 많은 외교·안보 갈등과 국익 손상을 야기했는지 목도한 바 있다.

또 떠나는 정부와 새 정부 간 불필요한 마찰이 없도록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서로 배려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 부담을 줄 새로운 정책이나 조치는 자제하고 국익 차원의 인수·인계 모델을 모색했으면 한다.

북한은 한·미 정부 출범 직전·직후에 중대 도발로 새 정부 시험해와
새 대통령은 위기관리시스템 즉시 가동케 해 안보 공백 없게 해야
다양한 도전 헤쳐갈 검증된 외교안보팀 구성과 정책 결정 시스템 중요
한·미는 한목소리로 키예프와 서울이 다름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국에 ‘스푸트니크의 순간’ 도래

정부 교체기에 겪게 되는 위기들은 새 정부의 정책 동력을 현저히 약화한다. 대비가 돼 있을수록 충격과 비용은 적어질 것이다. 특히 출범 초기 예방 외교나 위기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째, 북한발 안보 위기 변수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한·미 양국 정부 출범 직전·직후에 중대한 도발로 새 정부를 시험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이 현 정부 출범 직후 30일 동안 북한은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호’를 시작으로 4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서도 ‘화성-12호’와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8차례나 미사일을 시험했다. 미·중, 미·러 갈등의 격화로 유엔 안보리가 속수무책이니 두려워할 게 없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함께 수천 개의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지켜볼 것이다. 미국이 중국·러시아·북한으로부터의 삼중 도전을 동시에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위기를 조성하려 할 것이다.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 재개 의지를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는 억지력과 방어 역량을 무력화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이스칸데르 미사일, 전술핵 등이 더 시급한 실존적 위협이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해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성공 이후 ‘스푸트니크의 순간’이 오고 있다고 토로했는데, 이는 오히려 우리 상황에 더 맞는다.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이 1분 내 수도권을 때릴 수 있다면 정부의 통상적 외교·안보 정책 결정 체제보다는, 사전 결정된 군사안보 전략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미는 키예프와 서울이 다름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동맹 간 사전 조율 빠를수록 좋아

이러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새 정부의 대통령과 외교·안보 지휘부는 만반의 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이 즉시 가동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선제적 외교 노력은 필수적이다. 동맹 간 고위급 사전 조율은 빠를수록 좋다.

통수권 차원의 위기관리 대비 측면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핵 가방을 가장 먼저 인수하듯이 차기 대통령도 국가 위기 대응 시나리오부터 최우선으로 브리핑받는 새로운 관례를 확립하길 바란다. 최근 미·일 간에는 대만 유사시 군사 공동 대응 시뮬레이션까지 했다.

둘째는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정책 변화로 수반되는 외교 전략적 도전과 초기 대응 위기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 경쟁, 한·미 동맹, 한·중 관계, 남북 관계, 한·일 및 한·러 관계 등 영역에서 최소 10여 개의 난제가 시한폭탄처럼 기다리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북핵 해법과 확장억제, 3불 입장과 사드 추가 배치, 한·일 과거사와 한·미·일 협력, 인도·태평양 다자 협력, 한·미 연합훈련, 전시작전권 전환, 대러 제재, 종전선언 등에서 정책 조정의 방향과 폭에 따라 이해관계가 갈릴 것이다. 초기의 올바른 기조 설정과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선택은 위기를 자초하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사드 배치와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서 취한 입장은 동맹 신뢰 상실과 최악의 한·일 관계라는 대가를 치렀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는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고할 필요도 있다. 최종 선택지가 차선이나 차악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분명히 생길 것이다. 국내적으로 힘들어도 국익 차원에서 큰 방향을 잡고 어려운 결단을 했던 과거 지도자들의 통찰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 발목 잡는 사도광산

물론 춤도 함께 추듯이 상대국들의 호응도 필요하다. 최근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현 정부를 넘어 차기 정부에 대한 잘못된 신호이다. 2015년 일본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양국은 사활을 건 ‘외교 전쟁’을 벌였다. 결과에 실망한 일본 측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협상을 2개월 이상 지연시키기까지 했다. 사도 광산 등재 문제로 양국은 다시 격돌할 것이다. 올해 일본 참의원 선거와 엮이면서 모처럼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차기 한국 정부의 발목을 잡을 악재가 될까 우려된다.

다행히 새 대통령은 방미 정상회담 조기 추진 부담은 조금 덜게 되었다. 취임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 개최 ‘쿼드’(Quad, 미·일·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 정상회의 참석 후 방한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작년 5월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총론적으로 합의한 북핵, 지역 및 글로벌 협력 등 분야의 구체적 후속 협력을 통해 동맹 간 신뢰를 회복할 호기이다. 쿼드에 준하는 한·미·일 협력을 기대할 것이다.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새 정부는 미·중 갈등 심화와 시진핑 3연임 후 거세질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파고 속에서 분명한 원칙을 갖고 주도면밀한 대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셋째, 지정학적·지경학적 갈등이 야기하는 외생적 위기다. 미·중 전략 경쟁이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진행 중인 국제 지각판의 대충돌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미·러 대결로 파편화되어 우리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오고 있다. 대러 경제 제재 동참의 파급 효과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위기로 인한 에너지·원자재·자원, 곡물의 공급망 확보 등 경제 안보가 우리에게 사활적 문제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첨단 기술 경쟁의 주도권 싸움에서 초격차 유지는 더 큰 문제다.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 간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는 데 따른 민관 협조 체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 최종 결정이 국운 좌우

우리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활적 국익이나 국가 위기를 다루는 정책 결정 과정이 취약했거나 최선을 다했음에도 위험에 처했던 국내외의 사례는 적지 않다. 1962년 세계를 핵전쟁으로 치닫게 할 뻔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 사례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역저 『결정의 본질』은 국가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솔직한 소회를 이렇게 인용했다. “(대통령의) 궁극적 결단의 핵심은 관찰자들에게 파악될 수 없고, 심지어 종종 최종 결정권자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케네디 대통령은 최고의 외교안보팀과 수많은 토론 후에도 이러한 불확실성의 고뇌를 밝힌 것이다.

위기와 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새 정부의 경우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고의 외교안보팀 구성과 정책 결정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쌍방향 소통과 협의 체제, 중층적 자문 체제가 필요한 이유다. 대한민국호가 격랑 속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장과 항해사들이 전략 지도와 나침반을 통해 멀리, 넓게 보며 수많은 암초에 부딪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향후 5년이 50년간 국운을 좌우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새 정부 외교가 유념해야 할 10가지

1.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로 주도한다
2. 미국과 신뢰 관계를 잃으면 이류 동맹으로 추락한다
3. 중국과 공존하되 원칙과 자존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4. 북한의 핵미사일이 언제든 날아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5. 비핵화 진전 없이 남북 관계만 가서는 안 된다
6. 한·일 관계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미래 지향적으로 재설정한다
7. 국제 질서 대변동 과정에서 정체성·가치·지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8. 지정학에 이어 지경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대비한다
9. 부분이 아닌 전체를, 개별적이 아닌 통합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10. 외교가 국내 정치, 이념, 대중 영합주의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