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형님 선물에 울어버린 남 4남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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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한 체조심판 이병문씨/본사 북경취재팀에 부탁
『금년1월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형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시던 어머님 산소에 형님이 보내신 이 선물을 대신 바치겠습니다.』 남북으로 헤어진지 40년만에 체조 국제심판 자격으로 북경에 온 맏형 이병문씨(60)와 중앙일보의 도움으로 극적인 전화상봉을 했던 (중앙일보 9월21일자 14,15면) 이병용(58ㆍ서울 독산동)ㆍ병조(54)ㆍ병철(48)씨 3형제는 20일 형님이 북경을 떠나면서 보낸 선물을 전달받고 또한번 울음을 떠뜨렸다.
◎술ㆍ담배ㆍ은단 1상자/“40년 이산설움/어머님 영전에”
이 선물은 병문씨가 평양으로 가면서 중앙일보 취재팀에 전달을 부탁했던 것으로 보트카 1명ㆍ「홍초」(담배) 3갑ㆍ은단 1상자ㆍ빨간색 선물주머니 1개로 모두 북한산.
『한달전 형님과 뜻밖의 전화상봉을 한뒤 형님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거의 매일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40여년전 철없던 10대 시절로 되돌아가 추억을 더듬으며 큰동생 병룡씨가 말문을 열었다.
『한창 기운이 넘치던 20세 대학생이 이렇게 형편없이 늙어버린 것을 보니 서글픕니다. 오랜 타향살이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선지 얼굴에 유난히 주름살이 많고 나이보다도 늙어보이는군요.』
둘째 동생 병조씨의 말에 형제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님으로부터 제가 형과 똑같이 생겼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사진을 보니 정말 많이 닮았어요.』
헤어질 당시 겨우 7세로 맏형을 「언니」로 부르곤 했다는 막내동생 병철씨는 감개무량한 표정.
형제들은 선물을 갖고간 기자에게 『형님을 만난것 처럼 반갑다』며 병문씨의 북에서의 생활형편,건강,성격,말씨 옷차림과 형수ㆍ조카들의 근황 등을 쉴새없이 물었다.
서울의 동생들은 『병문씨가 북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원로체조인이며 건강하고 단단한 체구에 활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대답에 안도했다.
형제들의 대화는 어느새 맏형과 얽힌 일화들로 옮겨갔다.
배재중 체조선수로 전국을 석권하던 시절의 병문씨는 집안의 자랑이었다.
동네 야산 정상까지의 1백50m를 물구나무서기와 텀블링으로 올라가던 엄청난 노력가였던 맏이.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잠시도 집에 붙어있지 않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렸던 멋진 형이었다.
『전화상봉직후 북경으로 가서 직접 만나볼 기회가 올줄 알았는데 시일이 촉박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동안 형님이 평양으로 돌아가셨다는 보도를 접하고 가슴을 쳤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지도 모르는 남북체육교류때 국제심판인 형님이 남에 와서 우리 형제들과 함께 어머님 산소에 성묘를 가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40년을 기다려온 재회에의 꿈은 또다른 한을 남긴채 한층더 강렬한 염원으로 형제들의 가슴을 사로 잡고 있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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