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집성촌 남아 있다|문화 류씨 발산2동에 1백50가구 "옹기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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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근대화 과정을 통해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집성촌이 서울에도 남아 있다.
발산2동 KAL아파트 뒤편 2∼3층 짜리 단독주택들로 가득 차 있는 주택가.
전체주민이 2천8백여 명인 2·9·13통 일대에 1백50가구 7백20명의 문화 류씨들이 살고 있다.
고려 태조 때의 공신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있는 문화 류씨는 조선조 숙종 때 당시 명신 공이 개화동 쪽에서 농사를 짓다가 새로운 농토를 찾아 이곳 우 장산 기슭으로 옮겨온 것이 집성촌을 이루게 된 유래.
이후 지금까지 13대에 걸쳐 후손들이 번성, 지금 이곳의 류씨들은 촌수로는 모두 26촌 이내.
70년대까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다 이 지역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상업이나 일반직장으로 진출, 지금은 여느 서울시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집집마다 수천∼수만 평씩의 농토를 갖고 있었던 탓에 공항 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크게 상승, 대부분의 류씨들은 수억∼수십 억 원씩의 부를 축적.
바로 이 점이 지금까지 집성촌이 가능했던 이유.
『가만히 놔두면 하루가 다르게 집 값·논 값이 뛰는데 뭣 때문에 다 팔고 낯선 곳으로 가겠습니까.』
이곳 종친회 총무 유은상 씨(44)는 대부분의 류씨들이 자가용 한대씩은 있으며 이 일대 도로변상가의 40%는 류씨 소유라고 설명.
주민들 중 류씨가 많다는 점과 더불어 이같은 경제적 능력 때문에 이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류씨 집안 결혼식주례를 서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정도.
더불어 발산2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민방위협의회장·노인회장 등 각 직능단체의 회장직도 류씨들이 차지하고 있다.
류씨 자체내의 예절도 엄격해 집안 대소사를 서로 돕는 것은 물론 항렬이 높으면 나이차이가 나도 말을 함부로 놓지 못한다.
또 해마다 10월 보름이면 단체버스로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에 있는 명신 공의 묘소까지 가서 시제 사를 올리기도 한다.
유은상 씨는『집집마다 아들을 많이 낳아 지금까지 한군데 모여 부자가 된 것도 뒤쪽의 우장산과 앞쪽의 원당 평야, 그리고 한강이 훤히 보이는 지형지세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류씨들은 우장산을 영 산으로 여겨 음력10월 초하루면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산기슭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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