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대표선생」인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서울회담에 이어 16일부터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남북고위당국자회담에 7천만 한민족의 온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목의 집중은 이번 회담에 당장 어떤 가시적 성과를 기대해서라기 보다는 서울회담 이후 전개된 남북간 및 남북 양측과 주변국간 관계의 급변이 이번 회담에 어떤 형태로 가시화 될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으로 분석된다.
남북 양측은 서울회담을 계기로 한 「해빙」의 영향으로 북경아시아경기에서 공동응원을 한데 이어 바로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축구경기로 사실상 첫 민간교류의 장을 열었고 지금도 평양에선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민간교류에서 양측은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당연한 한 민족 한 뿌리임을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북한동포가 남쪽 선수단이나 음악인들에게 보여준 환영과 환대는 인상적이어서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한소 수교와 한중 무역사무소개설 합의에 이어 북한도 일본과의 수교교섭에 합의함으로써 북한이 마침내 현실인식의 본궤도로 진입하고 있다는 인상도 풍기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북측은 마땅히 축구선수나 음악인들에게 보였던 것처럼 총리회담 대표단을 맞는 것이 당연한 예의일 것이다.
또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 총리의 호칭을 「수석대표선생」이라 했던 지난 서울회담 때와는 달리 정식 관직으로 바로 예우했어야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측은 민과 관을 분리해 영접방식을 정반대로 달리했고,또 이쪽의 실체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존 자세를 고수했다.
수도꼭지를 틀고 잠그듯이 우리측 민관대표에 대한 환영인파를 풀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했다.
북은 실질적으로는 우리 총리 일행에게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대표단을 영빈관격인 백화원초대소에 맞이하는 형식적 예우는 갖추었으나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그들의 일관된 입장인 정당ㆍ사회단체 회의의 한 부분쯤으로 격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의 이같은 이중성을 보면서 우리는 심한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북한이 진실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한다면 이같은 이중성부터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세력일수록 양자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실체인정이 전제조건이 됨은 상식이다. 하물며 이 시대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인 통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자는 회담에 임하면서 한쪽이 다른 일방의 실체를 인정치 않으려 한다면 회담자체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도 그들대로 지금까지 북측 주민들에게 철저히 주입시켜온 대한민국의 실체에 대한 허구성을 당장에 시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는 점은 수긍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허구성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면 총리회담을 계속하는 북한당국의 논리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의 이같은 이중성이 계속되는 한 강 총리의 말처럼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에 무게를 싣는 대북협상 자세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시기도 맞지 않으며 실현성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