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눈이 왔어”라는 문장과 “어젯밤에 눈이 오더라”라는 문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문장 모두 어떤 사실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만, “눈이 왔어”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도 쓸 수 있지만, “눈이 오더라”는 경험한 사실에만 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어젯밤에 눈이 왔대”가 되면 다른 사람의 얻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라는 내용이 함축돼 있으며, “어젯밤에 눈이 왔나 봐”는 간접적인 단서를 통해 추론한 정보라는 사실이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말은 정보의 출처와 습득 방식을 문장의 끝에 전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몇 달째 정치의 시절이 계속되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진실인 양 받들어진다. 자신만의 의견(opinion)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자신만이 사실(facts)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의 의견만이 사실이고 진실인 것처럼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부인하고 단죄하기까지 한다.
처음 등장했을 때 무척 낯설었던 ‘탈진실(脫眞實, Post-Truth)의 시대’가 도래했다. ‘탈진실’이란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주관적 신념과 개인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치면 되지만,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태도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앎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고 말하며, 논어에서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고 가르친다.
진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어떻게 습득된 정보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