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 화합의 중지 모으기 "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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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송광사 송림에 어둠은 일찍 찾아왔으나「무엇이 옳은 깨침인가」를 찾는 스님들과 불자들의 논의는 때론 사자후로, 때로는 조용한 설득으로 끊어지지 않았다.
13, 14일 이틀간 보조사상연구원 주최로「불교사상에 있어서의 깨달음과 닦음」을 주제로 해 열린 송광사 학술회의(본보 10월9일자·일부10일자)는 그래서 이 시대 불교의 중흥을 다짐하는 기원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위상은 어떠한가.
1천5백년의 오랜 연륜을 가지고 우리 정신사의 뿌리를 이루었던 불교가 그 맡은바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체국민 속에서 차지하는 신도 수에 있어서도 기독교에 뒤지게 되었고 오랫동안 국민심성 속에 심어 왔던 자비심의 원류로서의 위치도 잃어 가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조직으로서의 불교가 보여준 난맥과 무기력에서 가장 큰 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걸핏하면 주도권다툼을 벌여 불자들의 신심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포교·교육·사회사업에 눈 돌릴 겨를이 없어 교세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총무원에서의 난맥은 참수도 자의 모습까지 가려 버렸다.
송광사 학술회의는 이같은 불교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의 하나다. 여기에는 이 회의를 마련한 보조사상연구원을 이끄는 법정스님 등 여러 스님과 불교학자들의 고심이 스며 있다. 불교의 핵심이 되는 깨달음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고 바른 자세를 갖추어 대중들에게 전해 주려 노력하는 참 불교인의 모습을 찾자는 기원이 배어 있다.
스님·학자·신도 등 1천5백여 명이 참석해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와 종정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를 놓고 벌인 이번 학술회의의 토론은 진지했다.
혹자는 이번 학술회의가 보조학파들이 종정스님에 도전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조계종이 교조로 받드는 보조스님의 사상을 현 조계종의 제일 웃어른인 종정스님이 배척할 수 있느냐, 따끔한 경고를 하자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억측이었을 뿐 회의와 토론은 순수한 학술적인 것이었다. 성철 종정도 흔쾌히 논의를 받아들여 문하를 보내 토론에 참석케 했다.
또 혹자는 곧 임기가 끝나는(내년 1월)종정스님의 위치를 흔들어 놓겠다는 저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녕 망령된 말들일 뿐이었다. 학술회의장을 가득 채운 열기는 오늘의 불교정신을 확립하자는 염원에서 나오고 있었다.
송광사 학술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한국불교가 참 불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당을 짓고 종을 만들고 큰부처를 모시는 것도 불사다. 그러나 오늘의 실정에서 더 중요한 불사는 불교정신을 확립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중들이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가는 정신의 불사다.
천주교는「내 탓이오」「한마음 한몸 운동」을 벌이고, 개신교는「절제운동」을 하고 있다. 사회비리를 지적하는 등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넓혀 가고 있다.
불교도 그러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조직인 조계종 총무원이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 종권 다툼을 그만두고 화합종단을 만들어 중지를 모아 참 불사를 계획해 가는 총무원의 모습을 송광사 법당 앞에서 그려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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